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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린 Aug 21. 2019

나만 홀대하는 집밥

세상에서 가장 촌스러운 김치볶음밥

 "나는 회사 가기 전에 찌개 같은 거 안 먹으려고. 몸에서 마늘 냄새날까 봐."


 난생처음 해외로 이직하게 된 강군은 행여나 한국 음식 특유의 마늘 냄새를 풍기게 될까 늘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세계적인 야구선수인 박찬호도 마이너리그에서 뛸 당시 한국 음식을 끊고 한 달 동안 치즈만 먹었다나 뭐라나. 우리는 저녁은 반드시 한식으로 된 집밥을 먹되, 아침은 마늘이나 장 종류의 냄새가 없는 것으로 해결하자고 약속했다.


 나도 그 규칙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새로 정착한 나라에 자연스럽게 섞일 필요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모두가 영어를 쓰는 이곳에서 나도 굳이 한국 음식만 고집하는 촌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물론 지금의 나는 외국인 친구들과 끼니를 해결할 때 한국인에게 빌린 볶음 고추장을 비벼가며 밥을 먹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이 곳 싱가포르에서 한국 집밥을 찾을 때마다 아주 미세하긴 하지만 이유 모를 죄책감 따위를 느끼면서 밥을 먹었다. 뭔가 해외에 나와서 적응하지 못하는 어리숙한 느낌이 든다는 바보 같은 생각에 그랬던 것 같다.


 길지도 않은 시간 안에 내 SNS는 이국적인 요리들로 도배됐다. 오늘은 아랍스트리트에서 먹은 형형색색의 볶음밥, 다음날은 푸짐한 칠리크랩에 이어서 젤리가 얹어진 아이스크림과 카야토스트까지. 여행자라면 으레 뽐내고 싶은 화려한 먹거리들로 내 계정을 꽉꽉 채워나갔다. 친구들이 누르는 '좋아요' 개수만큼 행복 지수도 당연하게 올라갔고 생각보다 한식으로 꾸려진 집밥 없이도 괜찮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화려한 음식들 사이에서 매일 마주하던 소소한 한식을 보고 있으니 괜히 평범해 보이는 그런 외국병(?)이 든 것이다. 외국인 친구들과 한국식 고깃집을 갔을 때도 썩 내키지 않았다. 특별할 게 없는데, 화려하지 않은데, 입맛에 안 맞을 텐데, 이걸 어떻게 소개해야 하나 고민만 했다.


 그렇게 집밥 냄새가 잊힐 즈음, 요리 선물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인에게, 여자에게, 다른 음식도 아니고 김치볶음밥을 선물로 받았다. 한국 음식을 너무 만들어보고 싶어서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한 입 넣는 순간, 익숙한 그 스팸햄 특유의 짭조름함과 볶은 김치의 단짠, 김칫국물을 입은 밥알이 입 안으로 밀려오면서 ‘그래, 이거지.’란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집에 반찬이 부족하면 김치와 함께 오징어 젓갈이나 무말랭이 등 엉뚱한 반찬과 섞어 눅눅하게 볶아대던 김치볶음밥. 온갖 화려한 음식들 가운데서도 김치볶음밥은 식감과 단맛과 짠맛의 조화가 정말 완벽했다. 심지어 외국인 친구가 처음 도전한 요리였는데도. ‘이것 봐. 나는 한국식 집밥 없이도 잘 살아.'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말이다. 이후로도 외국 친구들의 한국음식 사랑은 이어졌다. 나를 데리고 한국식 반찬이 그득한 뷔페에 데려간 독일인 친구 라라, 레베카뿐만 아니라, 삼겹살에 푹 빠진 싱가포리안 멜빈, 그리고 저녁 반찬은 한국식 반찬만 올린다는 중국인 부부까지.

 

 촌스러운 건 집밥이 아니라 나였다. 매일 사 먹는 다른 나라 음식에 취해 늘 먹던 각종 반찬들을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한 내가 촌스러웠다. 나보다 외국인 친구들이 더 한국 반찬을 좋아하는 걸 보며, 왜 나만 한식을 홀대하고 있는지에 대한 민망함이 몰려왔다. 어차피 김치볶음밥 한 입에 무너질 거면서.


 "자, 그래서 이 고기(삼겹살)는 어떻게 먹는 거야?"  리히텐 슈테인에서 온 친구 레베카가 나한테 물어봤다. 당시엔 상추에 고기랑 김치 등을 넣어서 싸 먹으면 된다고 그냥 대충 말했는데, 다음에 가면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 삼겹살은 한국인에게 가장 대중적인 육류고 쌈장은 고추장과 된장을 섞은 소스이며, 짝꿍으론 기름장도 있고 사실은 김치도 불판에 구워 먹는 데다 가끔은 상추쌈에 밥도 싸서 먹는다고. 그리고 그땐 싫어할까 봐 말 못 했지만 먹고 나면 매운 냄새 폴폴 풍기는 마늘이나 고추도 넣어서 먹는다고.


한국 고기 뷔페를 처음 찾은 레베카와 라라. - 19.08.08, 싱가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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