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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린 Aug 08. 2019

'애미야, 국이 짜다' 대신에

밥상머리에서 배운 배려

 대망의 시어머니 대사인 '애미야 국이 짜다~'를 기억하는가. '네가 정성 들여 국을 끓인 건 알겠다만 간도 안 맞고 맘에 들지 않으니 다시 해오던가 그렇지 않다면 먹고 싶지 않다'의 준말.


 다른 나라 음식도 쉽진 않지만 한식으로 밥상 차리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일단 정성 들인 티가 안 난다. 장조림 류는 특유의 짠맛 때문에 적게 덜어내야 해서 식탁이 꽉 안 차고 푸짐한 찌개 하나만 올리자니 뭔가 부족해 보인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고추장찌개는 재료부터 달달 볶은 뒤 육수를 부어야 하고 미역국은 미역부터 몇십 분을 미리 물에 불려놓아야 하며, 된장찌개는 또 반대로 육수가 먼저 들어가서 사전에 재료 손질에 시간을 써야 한다. 기름 두르고 온갖 재료를 넣어 휙 볶아내는 볶음밥과 달리, 우리나라 국은 깊은 맛이 우러나오고 재료에 간이 밸 때까지 끓이고 또 기다려야 한다. 때문에 엄마는 예전부터 밥을 단출하게 차린 날엔 '밥상에 국이 없는데 괜찮냐.'는 말을 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저 대사는 참 예의 없어 보인다. 밥상을 한 번이라도 차려봤다면 저런 말은 농담으로라도 쉽게 못 할 것이다. 맛에 대한 평가는 누구에게나 당연히 열려있다. 하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따로 있다.


 신혼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나는 블로그를 찾아가며 된장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애호박과 두부, 버섯을 넣고 된장 한 숟갈을 넣어 국을 끓였는데, 그날따라 육수가 많았던 탓인지 정말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맹탕 그 자체였다. 그런데 남편이 한 숟갈을 뜨더니 "어우~ 너무 맛있다~"라며 칭찬했다. 순간 나는 '진심인가? 아무 맛도 안 나는데?'라고 생각했고 간을 맞추기 위해 국을 더 끓여서 다시 먹었다. 며칠 뒤, 싱거운 국을 만회하고자 된장 두 숟갈을 넣었더니 너무 짠 게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 그는 "된장 맛이 무지 많이 난다. 진하네~"라고 말했다.


 아차, 예의는 밥상머리에서 배운다더니. 그는 '애미야 국이 짜다' 대신에 다른 표현으로 나를 배려한 것이다. 직설적인 대화법을 갖고 있는 나라면 "국이 좀 짠 거 아냐?" 혹은 "아무 맛이 안 나는데..”라고 했을 텐데. 맛에 대해 말하는 건 쉽지만 이걸 듣는 입장은 절대 편하지 않다. 그러니 기다려주자. 요리한 사람이 눈치채도록 기다리고 돌려 말해보자.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크게 다르지 않기에 만든 사람도 맛을 보면 대충 오늘 요리 점수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남편은 종종 음식을 씹기도 전에 "음~~~!(엄지척)"을 해서 약간 의심스럽긴 하지만. 아무튼 좋은 말로 맛을 표현해주면 만드는 입장에서 기분은 좋다는 것이다.


 어느 일요일 점심식사 자리, 그날따라 아빠는 식사자리에서 내게 훈수를 줄줄 늘어놓았고 참다못한 나는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던데"로 반항을 시도했다. 그러자 아빠는 "원래 예의는 밥상머리에서 배우는 거야."라며 나를 할 말 없게 만들었었다. 당시 밥 먹다 한소리 들은 게 기분이 별로여서 겨우 밥을 꾸역꾸역 넣고 방에 들어갔던 기억이 나는데, 그래도 이것 하나만큼은 아빠 말이 옳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의는 밥상머리에서 배우는 게 맞다고 말이다.


매일 색도 맛도 달라지는 내 된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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