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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린 Aug 01. 2019

달걀간장밥

집밥을 보면 가족을 알 수 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맞벌이셔서 초등학교 때부터 직접 요리를 했어요."


 심야시간, 모 요리 예능에 나온 아이돌 가수가 팬에 기름을 별모양으로 두르면서 말했다. 그 가수는 어릴 때부터 먹어왔던 별미라며 달걀 간장밥을 만들어 게스트들에게 맛보게 했다. 한두 번 만들어본 솜씨가 아니었다. 달걀과 간장, 그리고 밥만 있으면 되는 요리라니 얼마나 간단한가. 어린 아이의 눈으론 달걀은 프라이를 시도하다 망쳐도 그냥 휙휙 볶으면 스크램블 에그가 되는 비교적 쉬운 재료니 골랐을 테고, 거기다 간이 너무 심심하니 짠맛도 내고 색도 낼 수 있는 간장으로 재료를 버무렸을 것이다. 아이가 집에서 부모를 기다리며 끼니를 때우기 위해선 그게 최선의 레시피였을 것이다. 지금은 무대를 넘어 연기와 예능 활동으로 돈도 많이 벌어서 꽤 화려해진 그였지만 익숙하게 간장밥을 만들어내는 그를 보며 그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외로웠을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친구네 집에 놀러 갔더니 어머님이 연두부같이 부드러운 일본식 달걀찜을 먹으라며 내오셨다. 신기했다. 한동안 뜸을 들이고 시간을 들여야 비로소 만들 수 있는 게 일본식 달걀찜인데 집에서 이걸 먹을 수 있다는 게. 달걀로 만들 수 있는 요리라곤 프라이가 다인 줄 알았다. 기름에 튀기면 끝나는 가장 빠른 달걀 요리.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네 집은 아버님이 일을 하시고 어머님이 주부였기에 시간을 충분히 들여야만 하는 요리가 식탁에 종종 올라왔던 게 아닌가 싶다. 맞벌이로 부모님이 바빴던 우리 집은 계란 프라이가, 어머님이 가사를 담당하시던 친구의 집엔 고운 달걀찜이 더 어울리는 듯했다.


 더 거슬러 초등학교 때를 떠올리면 라면을 끓여먹는 게 참 대단한 일이었다. 6학년이던 그땐 면을 한 번 쪼갠다 안 쪼갠다, 부스러기를 넣는다 안 넣는다, 푹 익힌다 꼬들하게 한다로 친구와 갑론을박을 펼치는 게 인생에 가장 큰 일이었다. 취향이 다르면 괜히 섭섭하기도 하고 입맛이 같으면 같은 라면도 더 맛있게 느껴지고. 지금은 밥 대신 끼니를 해결하려고 겨우 뜯는 게 라면 봉지인데 말이다. 그만큼 정갈한 한식 집밥 대신 라면을 자주, 다양한 방식으로 끓여먹었다. 어쩔 수 없었다. 당시에 엄마는 학습지 교사로 일하느라 바빴던 탓에 집 안에 학습지를 종류별로 펼쳐놓고 분류하는데 온 저녁시간을 할애하셨다. 또 아빠는 해외 출장으로 오랜 기간 국내와 해외를 오갔기 때문에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 스스로 밥을 해결하는 게 그땐 맞았다. 그렇게 부모님의 맞벌이가 길어지면서 라면 외에 제멋대로 소스를 휙 섞어 만든 비빔면이나 남은 반찬을 다 섞어 볶은 볶음밥도 내 야매(?) 레시피에 이름을 올렸다.


 즉석식품도 내 저녁 식탁을 채우는 데 한몫을 했다. 당시 오뚜기에서 출시한 미트볼 레토르트 제품은 종이 박스를 제거하고 비닐을 살짝 열어 2분 간 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되는 간편 조리식이었다. 극도로 짜고 달달한 소스의 향연으로 범벅된 이 즉석 반찬과 함께 짱구 그림이 그려진 3분 컵케익도 내 허기를 채우는 데 큰 일조를 했었다. 이런 즉석 반찬들은 '시간은 없지만 그래도 맛있는 걸 먹여야 한다.'는 부모님의 부담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집 안의 상전'이 된다는 고3 수험생 무렵엔 그래도 늘 꽤 푸짐한 저녁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행여나 빈혈이 생길까 소고기 미역국을 자주 끓여줬고 흰쌀밥은 몸에 독이라며 콩이든 조든 뭔가를 항상 섞어 밥을 지어주셨다. 나는 신혼살림을 겨우 막 정리한 지금, 매일 저녁을 차려보니 당시 일을 하던 엄마는 이 코스를 매일 어떻게 처리했나 신기하다. 올해 초 결혼을 앞둔 때엔 엄마가 바깥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하지 말라며 종종 나를 말렸다.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고 몸에 안 좋다며 집에서 밥을 먹으라고 잔소리를 많이 했다. 집을 떠나기 전 마지막 저녁식사 땐 버터를 두른 전복부터 한우 구이 등 집에서 보기 힘들던 요리를 실컷 먹고 집을 떠났다.


 밥을 잘 못 챙겨 먹던 그때를 떠올리면서 부모님을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건 아니다. 그때 어설프게 갈고닦은 자잘한 요리 실력으로 근사한 비빔면과 달걀말이와 각종 찌개로 저녁상을 푸짐하게 차리고 있으니. 오히려 그때 반찬들을 떠올리며 얼마나 부모님이 바쁘고 성실하게 살아왔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았는가. 얼굴의 주름과 눈빛을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엿볼 수 있듯이, 식탁에 올라온 반찬들을 보면 그 가족의 모양을 알 수 있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집의 분위기와 역사는 물론 부모님의 사이까지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집은 해외 출장을 떠난 아빠와 외국행을 떠난 막내딸, 그리고 회사일에 바쁜 큰 딸 탓에 식탁이 조용하다. 엄마는 집에 밥을 먹는 사람이 없어서 쌀에 벌레가 생겼다며 단체 대화방에서 귀여운 투정을 부렸다. 북적북적하던 식탁이 근 몇 달 만에 갑자기 조용해졌으니 어색할 만도 하다. 오늘, 당신의 저녁 식탁엔 어떤 반찬들이 올라와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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