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
그믐달이 뜬날, 12월 새벽 나는 두만강을 건넜다.
아버지, 외 할아버지, 그리고 어떤 삼촌이랑 함께 정든 고향을 떠났다. 떠나는 길이 가볍지만 않았다. 한달동안 떨어 졌던 동생과 엄마를 만날수 있었지만 발걸음은 무거 웠다.
이제가면 다시는 못 올 것 같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뵙지 못할 것을 알기에 어린 나이에도 서글펐다. 12월에 두만강은 얄 궅었다. 강 기슭은 얼어 붙었고 가운데는 물이 솰솰 흘렀다. 엄동설한에 살을 에이는 듯한 고통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무사히 두만강을 건너, 우리를 기다리는 택시를 탔다. 처음 승용차를 타보았다. 승용차 안은 참 따뜻하고 포근했다. 앞으로 꽃길만 펼쳐 질 거라고 미리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나만 좋은 것이 아니었나 보다. 외할아버지께서 한 마디 하신다.
“이야, 시당책임비서 보다 났다야. 시당책임비서도 이런 차는 못 타봤을꺼야,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할아버지는 현재 구순을 바라 보신다. 따뜻한 남쪽 나라로 이사와서 제주도 여행도 가시고, 10살때 헤어 졌던 누이도 찾으셨다. 그것도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에서.
처음 누이를 찾았다고 할때 나는 가짜 고모할머니라고 생각했다.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는 한 믿을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모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만나는 동영상을 보는 순간 알아 차렸다. 유전자 검사 따윈 필요치 않는, 두분은 그야 말로 붕어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