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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이스 Sep 09. 2023

엄마 엄마 우리 엄마

우리 엄마는 7남매 중에 여섯째로 태어났다. 경희, 정희, 명희, 기철, 동철, 윤희, 동명.

윤희가 바로 우리 엄마다. 집안에서 막내로 태어났지만 17살에 할머니 (우리 엄마의 엄마)가 돌아가시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해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 엄마는 생활력이 강하다. 이북에서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리는 시기, 많은 사람들이 자식들을 집에 두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두만강을 건넜지만 우리 엄마는 자식 3명을 꿋꿋이 키워 냈다.


배불리 먹이진 못했지만 굶기진 않았고, 친척집에 동냥 한번 보내지 않았다. 어디 그 뿐이랴. 자식 3명을 거느리고 여기 이남까지 오지 않았는가? 살아가는게 팍팍해 토론토까지 자식들을 거느리고 갔고, 이제는 영주권도 받았다. 나름 쉴 때도 된 것 같지만 아직도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너무 열심히 사는 엄마가 못마땅할 때도 있다. 남들처럼 소박하게 워라밸을 즐기면서 살고 싶다는 나의 생각은 욕심인 것 같다. 엄마의 가장 큰 목표는 노후 준비이다. 자식들에게 손 내밀지 않고, 일을 하지 않아도 월 300만 원의 passive income을 만들면 시골로 귀향하신다고 한다. 즉 우리 집의 대장이자 가장인 우리 엄마. 대단하고 존경하는 부분이 많다.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엄마의 10년 목표는 내 집 마련이야.” 당시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일용직 아버지의 월급과 간간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엄마의 월급으로는 내 집 마련의 문은 턱 없이 높아 보였다. 그냥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우리 엄마, 그 목표 달성이다. 외식 한번 하지 않았다. 식당에 가는 날은 친척들이 모인 설명절이나 교회에서 주말에 데리고 나가는 외식이 전부였다. 언제 한번 가족이 오붓하게 식당에서 밥을 먹어 본 적 도 없다. 쇼핑도 마친가지이다. 우리가 입었던 옷은 교회에서 기부해 준 used clothes 들이었다.

 

동네 아파트 청소며 파지 줍기, 소주병 모아서 팔기 등등 안해본 일이 없는 것 같다. 미용사 자격증도 땄다. 그렇게 갖은 고생을 한 덕분에 우리 엄마의 목표는 성공한 것 같다. 엄마는 말했다. 돈을 버는 것보다중요한 게 소비라고. 어떻게 쓰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그래서일까? 3년을 간호사로 일한 나지만... 수중에 남는 돈 하나 없다. 제주도 가고 싶을 때 가고, 먹고 싶은 거 먹고, 사고 싶은 거 사니 수중에 남는 건 없더라. 어렸을 때 누리지 못한 것을 보상한다는 심리로  하고 싶은 거 다 해본 것 같다. 이제 나도 엄마의 말을 들을 때가 된 것 같다. 어느덧 서른, 곧 새로운 가족도 만들 예정이고. 지금처럼 살면 파산임이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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