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지 않았던 그녀, 그녀에게 더 끌리는 이유.
서늘한 바람이 어느새 쌀쌀하게 느껴지는 십이월.
두 달이란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중동에서의 선교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를 만나는 날이다. 토요일 아침, 부지런히 일어나 만날 준비를 하고 서둘러 지하철을 탔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한 시간 반 남짓한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는지. 그리고 오늘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하고, 또 뭘 먹어야 하는지.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멍하니 그저 창가만 바라보다 역곡역에 도착했다.
저 멀리, 마중을 나와있는 그녀.
"안녕하세요, 많이 기다렸죠?"
"안녕하세요."
어색하다. 역 근처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소재라고는 '그녀의 동생' 이야기밖에 없기에, 동생 얘기만 주구장창 주고받았던 것 같다. 그렇게 어느 정도 긴장감이 풀릴 때쯤, 진지한 질문을 나눌 수 있었다.
"어, 근데 어떻게 선교사 훈련까지 받게 된 거예요?"
"아, 원래 제가 대기업에 일찍 취직을 해서 다니고 있었는데요, 생각하던 것과는 너무 달랐어요."
"뭐가 그렇게 달랐어요?"
"물론 직장생활을 한다는 게 좋긴 좋죠. 열심히 일하고, 그 돈으로 쇼핑하고, 술 마시고, 쇼핑하고, 술 마시고. 그런데 문득 '이렇게 사는 게 전부인가?, 이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도 어렸지만, 나보다 어린 친구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뭐랄까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딱 일 년 다니고 사표내고,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와우, 정말 대단하네요. 멋지네요."
나로서는 정말 상상도 못 할 선택을 한 그녀. 정말 멋지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시간이 꽤 지나서 자세한 대화 하나하나가 기억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정말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를 상당히 멋지게 키우셨다는 것. 선택의 자유, 그리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어렸을 때부터 잘 알려주셨다는 것이다. 물론 나의 부모님은 좋은 분이시지만, 나를 그렇게 키우시지는 않았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저 우유부단하고 언제나 갈팡질팡하는 외동아들이었다.
이런 내 앞에 앉아있는 그녀는 너무 멋졌고, 아름다웠다.
나와는 너무 다른 그녀, 하지만 너무나 사랑스러운 그녀.
그녀와 나는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작가의 말
항상 주위 사람들이 제게 물어봅니다. 어떤 이성을 만나야 하냐고, 그리고 (나만의 그 또는 그녀를)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그때마다 저는 대답해줍니다. "너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이 있을거야. 너와 다른 사람, 하지만 그것이 정말 너에게 아름다움으로 혹은 멋짐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어. 바로 그 사람이야!" 여러분의 그 혹은 그녀는 어떤 사람인가요? 외모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어쩌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나요? 나와 같아도, 달라도 좋아요. 내면의 아름다움만 간직하고 있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