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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앤 Mar 22. 2024

후원, 그 무심함에 대한 성찰

매월 이체만 하는 후원, 이제 그만할 테다.

월드비전과 인연을 맺은 건 꽤 오래전의 일이다. 어떤 선생님의 책상에서 월드비전이라는 로고가 적혀있는 종이액자에 어색한 표정의 깡마른 흑인 아이의 사진을 보았다. 한 달에 2만 원으로 해외에 있는 어려운 아이들의 생활과 교육을 지원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1:1로 결연을 맺어 지원하다는 것이 좋았다.


처음 결연을 시작했을 때는 지구 반대편에 사는 아이의 대모가 된 듯한 느낌에 기분이 이상했다. 나도 그 선생님처럼 사진을 세웠다. 내 화장대에. 내가 눈화장을 할 때 그 아이도 미소 짓는 하루를 보내길,  옷매무새를 가다듬을 때 후원금으로 옷 한 벌이라도 더 살 수 있길 바랐다.


간간히 번역봉사자가 아이의 대답을 영어로 번역한 설문지 형태의 편지와 사진들이 도착했고, 사실 그때도 영어로 글쓰기가 어색하다는 이유로 내가 답장을 한 것은 한두 번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여가시간에는 축구를 한다는 머리 짧은 여자 아이가 연필로 꾹꾹 눌러 그린 축구공과 학교에 다닐 수 있어 좋다는 말이 가슴에 내내 남았다.


1년이 흐른 후 이 좋은 것을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학교에 있는 30명이 좀 안 되는 아이들과 결연을 신청, 매월 3만 원을 후원했다. 십시일반으로 모은 기부금에 모자라는 액수는 내가 채웠고, 교육적 활용도 2차 목표였기에, 후원 아동에게 편지 쓰기도 분기별로 했다. 답장이 오면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크리스마스 되기 전에는 1년간 모은 돼지저금통을 잡아 후원금에 비하면 제법 큰 선물금을 보내기도 했다. 한 달 후 그렇게 보낸 돈으로 샀다며, 염소와 재봉틀, 각종 식료품을 한가득 쌓은 사진과 감사의 편지가 도착했고, 아이들도 나도 매우 뿌듯해했다. 학년이 끝날 때, 1인 후원자가 될 학생을 모집했고, 잘 이양시키며 마무리했다. 그렇게 2년 정도 반복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의미 있던 후원의 기억은 거기까지다.


20년이 흐른 지금, 후원 증좌 요청을 하던 월드비전 여직원의 한 순간 울먹하던 목소리에 홀라당 하여 두 명을 더 후원하게 되었다. 나라도 다르고 성별도 다른 아이들의 사연과 사진이 왔지만, 더 이상 내 화장대엔 액자를 세워둘 공간은 없었다. 그 사이 후원 하던 아이들은 독립할 시기가 되어서 후원을 마무리하게 되었다는 연락, 새롭게 결연된 아이를 소개한다는 안내 등을 받았지만, 이제 내게 결연은 매월 통장에서 자동이체되는 금액 그 이상의 의미가 아니었다. 연말정산에서 나 이렇게 기부하고 있다는 인증서를 발급받고 있을 뿐, 내 마음은 하나도 후원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 아침 남편이 더 일찍 출근하는 바람에 막내의 등교를 도우며 차에서 유튜브 '날기새키즈'를 같이 들었다. 추수하는 밭에 떨어진 이삭을 줍지 않음으로 가난한 사람의 몫을 남겨두었다는 이스라엘의 풍습을 이야기하시며, 이삭 줍기를 위해 각자는 얼마를 기부하는 것이 좋을까 물으셨다. 정답은 없으나, 목사님은 교회성도들과 함께 30분의 1(한 달 중 하루치의 일당) 정도쯤이 좋지 않을까 하여 1년간 모은 1억 원을 동장님들과 회의를 거쳐 지역에 의미 있게 기부하셨다고 하셨다.


30분의 1. 폐지를 주우시는 어려운 형편에도 이삭 줍기에 동참하신 한 할머니의 사연을 들으며, 나의 이삭 줍기에 모자라는 것은 후원금액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원금이 언제 이체되는지도 모르고 사는 것처럼  후원 아동들이 어느 나라에 사는지,  취미가,  꿈이 뭔지도 모른다. 후원이 끝나도록 엽서 한 장 편지 한 장 보내지 않는 무심함이란.


그동안 '바빠서...'라고 미뤄두었던 진짜 후원자 되기에 도전해 봐야겠다. 화장대에 자리부터 만들어야지. 요즘은 우편만 아니라 인터넷으로도 소식을 주고받는 것 같은데, 월드비전에 전화도 해봐야겠다. 번역도 잘해주는 시대, 어설픈 영어 실력 핑계 대지 말고 엽서라도 쓰자. 매월 말일은 편지 쓰는 날로 하자!


P.S. 월드비전에 전화해보았더니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단다. 알고 봤더니 나도 이미 오래전에 회원가입이 되어 있었다. 물론 아이디도 비번을 찾기 위해 헤매어야 했지만. 그건 엔프피의 일상이다. 3년 이내에 결연 해지된 아이들, 지금 현재 아이들의 동영상까지 있었는데... 무심했다. 정말 무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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