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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앤 Mar 26. 2024

수영 얼마만큼 좋아해 봤나요?

이만큼? 이따만큼?

  사실 수영이 좋은 건지, 물 위에 떠 있는 느낌이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올해 1월, 초급반이 아니라 바로 위 상급반인 숙달반을 등록했다. 군에서 운영하는 좋은 시설과 수질에 수강료도 저렴해서 군민 할인과 다자녀 할인까지 받으면 난 월 42,000원을 내고 화~금요일까지 다닐 수 있었다. 연임하신 수영강사님이 편입생인 내게 "수영, 언제, 얼마나 배우셨어요?"하고 물으셨다.

  등록하기 전 미리 떠올려보니, 정확히는 29년 전 여름,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한 달 배웠더랬다. 자유형 팔꺾기는 배우지 못했고, 배영과 평영까지 배웠다. 대학교 1학년 교양수업 때 자유형으로 어떻게든 50미터를 쉬지만 않고 가면 A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죽을 똥 살 똥 갔던 것이 내 마지막 영법수영이었다.

  내 지론은 이랬다. '영법수영은 운동하기 위한 것으로 레인이 있는 수영장에서나 하는 것이고, 그 외 모든 수영장과 바다에선 일명 개구리수영, 개헤엄 등 얼굴을 둥둥 띄워놓고 하는 물놀이를 해야 하는 게 맞다'였다. 힘찬 발차기까지 장착하여 자유형으로 휴양지 수영장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을 보며 미간이 찌푸렸던 것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생각에 더해 아마도 완벽히 자유형과 접영 등을 마스터하지 못한 자격지심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

   피부타입이 매우 건성인 나는 겨울이면 책장을 잘 못 넘기고, 마지막 퇴청자가 되는 날이면 세콤 지문인식이 안 되어서 퇴근이 늦어지기 일쑤였다. 그래선지 나를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물이 더 좋았다.

  내가 해 온  수영은 얼굴을 내놓고 하는 변형 평영과, 눈에 물 들어갈 일 없이 두 손을 날개삼아 펄럭이는 변형 배영이었다. 한 달 배운 수영을 물놀이에 적합하도록 변형한 것이다. 특히 물 위에 누워 손과 팔을 팔랑이며 발을 살살 움직이다 보면 10분도, 20분도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었고, 마치 물 위 나비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소금쟁이가 더 가깝나? 마닐라 히든 벨리 노천 온천 풀장에 누워 나뭇가지와 잎들이 테두리를 둘러준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 기억은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지금도 휴양지 수영장에 가면 한쪽 벽에 붙어 왔다 갔다 하거나, 사람이 조금 뜸한 겨울 저녁 식사시간에 수영장을 독차지하며 그렇게 팔랑이곤 했다.

  아들 셋을 키우던 우리는 해마다 여름이면 집 가까이 있는 덕유산리조트 세솔온천을 가서 늦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다 오곤 했다. 락스 냄새 없는 차가운 덕유산 자연수가 폭포처럼 내리고, 몸이 얼어갈 때면 인공바위와 나무가 멋스럽게 품고 있는 따스한 온천물에서 몸을 녹였다. 몸이 노곤해지면 겨울이었음 하얀 눈이 덮여있었을 온천 바로 옆 스키장 슬로프에 한가로이 놓인 썬베드에서 잠깐 눈을 붙이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물놀이 마니아 우리 가족에겐 지상낙원 같았다. 어떤 해는 비 오는 날임에도 포기할 수 없어 갔었는데, 웬걸... 사람들이 없어서 더 좋은 게 아닌가? 풀장과 온천장을 왔다 갔다 하며 조명이 켜지는 순간까지 총 8시간을 놀다 나왔는데, 주차장에서 갑자기 어지럼증으로 토할 것 같은 느낌에 주저앉았다. 우리 막내는 양쪽 허벅지 전체에 좁쌀만 한 두드러기가 솟기도 했다. 가족이 다 물을 좋아한다는 말을 사람들에게 할 때면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까지 물놀이를 했던 그날의 기억을 무용담처럼 꺼냈다. 그야말로 물놀이 러버들이었다.

  실내 수영장엘 가려면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시골에 살면서도 세 아들을 모두 제대로 된 수영을 가르치며 나도 언젠간 배우리라 소망만 했었는데, 올해 내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제대로 된 수영은 한 달 밖에 못 배웠지만 물놀이러버 29년 역사 눈질끈 감고 믿으며, 초급 3개월을 떼고 접영을 시작하는 10시 숙달반에 들어간 것이다.

  접영은 같이 시작했고, 어찌어찌 배영과 평영을 교정받았다. 그러나 정말 교정되지 않고, 애를 먹이는 것이 자유형이었다. 집에서 팔다리동작을 연습하기 위해서 피아노 의자에 엎드려 얼마나 파닥거렸는지 모른다. 그 즘 내가 가장 즐겨 찾은 유튜브영상도 모두 수영이었다. '수영에 미치다', '수영독학 TV', '굿 나잇 진조' 등 관련된 채널을 열심히 구독하며 뭔가를 공짜로 배우기에 정말 좋은 세상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자유형은 25m를 겨우 가다가, 턴을 해서 50m 한 바퀴를 돌게 되고, 억지로 억지로 100m를 한 번에 오갈 수 있게 되었지만, 늘 도착할 쯤이면 누가 목이라도 조른 듯 가쁜 호흡을 몰아 쉬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언제 나는 자유형에서 자유로워지나...' 싶으며 사기가 꺾일 때쯤 내가 얼마나 수영러버였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 사람을 만났다.

  어떤 연수에 참석했었는데, 누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평소 안면인식장애, 장기기억불가 수준의 불편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엔 도저히 알아볼 수 없어 "누구....?"라고 말끝을 흐리는데, "수영팀이요"라고 힌트를 준다. 그래도 모르겠는데, "제주도 호텔이요!"라고 결정적 팁을 주셨다. 번개처럼 추억이 스치며 갑자기 웃음이 빵 터졌다. "그때 뭐 쓰셨었죠?"라고 내가 묻자 "수건이요"라고 답한다. 둘 다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때도 연수에서 처음 만나 제주도를 가게 되었고, 미리 공지하지 않아 수영복을 안 가져갔었는데, 투숙호텔에 수영장이 있지 않았겠는가! 헉!! 절대 그냥 칠 수 없다 생각한 나는 ENFP 기질을 발휘! 밤에 스트레칭이나 하려고 가져간 검정레깅스 위에 검정 히트텍을 래시가드 삼아 입고 수영장에 들어가려는 걸 그 분과 그의 지인들이 보고 자신들도 어떻게라도 오겠다며 의상을 갖춰 합세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수모였다. 호텔수영장인데도 절대 수모 없이는 안 된다는데 난감해하는 우리를 보며, "뭐라도 쓰시면 됩니다." 그러는 거다. 그 말에 한 분이 먼저 "나 등산모자 있어요"하고 가지러 가셨고, 우리 둘은 그나마도 없어서 '뭐라도 쓰면 된다는 거지?'라며 머리를 굴리다 수건으로 양모자를 만들었고, 그렇게 우리 둘은 그날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그 고급진 야외 밤 수영장을 누볐다.(다행히 안전요원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가 찰 노릇이었겠지만 머리에 뭔가를 쓴 건 맞으니까) 온갖 조명이 밤을 밝히고, 커다란 스크린에선 내가 몇 번을 봤는지도 모르는 라라랜드 영상이 지나가며, 분위기 있는 재즈 음악이 흐르던 호텔 수영장. 그와 너무 안 어울리는 사람들이었지만, 서로를 의지해 끝까지 수영을 즐겼더랬다. 자유형이 계속 깨지지 않는 송판처럼 느껴지던 무렵 다시 한번 내 안의 수영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깨닫는 기분 좋은 회상이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3개월 강습의 마지막 날 기적처럼 자유형에서 숨이 트였고, 250m=수영장 다섯 바퀴를 멈추지 않고 돌고도 숨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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