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티파니에서, 나는 윗동네에서 서성인다

#헐거워지는 시간들

by 혜나무


주말이면 주변을 산책한다. 집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호수공원이,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중앙공원이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김밥과 돗자리를 가지고 공원으로 소풍 가기를 즐겨했는데 아이들이 커가면서 같이 나서기를 꺼려해 남편과 단 둘이 산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공원이 지루해지자 우리는 한적한 윗동네를 돌기 시작했다.

윗동네는 아파트가 아닌 개인 주택이나 고급 빌라 단지다.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다는 집, 연예인 아무개가 산다는 곳으로 향한다.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거푸집으로 찍어낸 듯한 아파트가 아닌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멋스러운 고급 주택들이 나온다. 차고가 따로 있고 나지막한 담장 안에는 화분 가꾸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낮은 탄성을 지르는 멋진 나무들이 조경수로 심어져 있다. 거리에는 사람도 없고 세콤 경비차량만 스르르 돌아다닌다.


지금 살고 있는 집값의 네다섯 배는 훨씬 넘음직한 집들 앞에서 우리는 '티파니 앤 코(TIFFANY& Co.)' 앞의 오드리 헵번처럼 서있다. 반짝이며 환상을 주는 보석 같은 집들을 황홀한 듯 쳐다보며 이리저리 기웃거리기도 한다. 아이들이 독립을 하면 땅 값이 싼 변두리로 나가 이러이러한 집을 짓자며 부러움과 아쉬움을 달랜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 'TIFFANY & Co.' 앞의 홀리(오드리 헵번 역)


허한 배부름을 안고 '윗동네 한 바퀴 돌기'를 마치면 우리는 동네 마트로 향한다. 가는 길에 한 작은 카페를 스치는데,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운동복 차림으로 야외 테라스에서 몇몇 사람들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수 김현철 씨다. 그는 우리가 좀 전에 돌던 윗동네에 산다. 그렇지 않아도 동네 마트에서, 호수공원 주변 음식점에서 가끔 보기도 했었다. (그 고급 주택가에는 상가가 없다)

우리는 그를 볼 때마다 그의 노래보다는 그가 가진 저작권이라든지 사는 집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달의 몰락'을 노래하지 않고 계산하고 있었다. 가질 수 없는 것들을 향한 헛배를 키우는 사이, 예쁜 달 하나로 행복해하던 우리의 풍요로운 은유는 몰락하고 있었다.



우리는, 경기도 외곽의 낡은 15평 아파트에서도 둘만 있으면 좋았다. 직장 때문에 신도시로 이사와 다세대 주택에 살면서 봄이 되자 보이지 않던 검은곰팡이들이 안방에 진을 쳐도 예쁜 딸이 태어나 감사했다. 태어난 딸을 친정부모님께 맡기고 맞벌이하며 방 벽에 곰팡이가 피지 않는 집으로 갈 수 있어 하이 파이브를 했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 화장실이 두 개 딸린 아파트를 은행의 자애로운 도움으로 구매할 수 있어 감격했다. 둘째를 시부모님께 맞기고 더욱 열심히 모아 10년도 되기 전에 온전한 우리 집을 만들었다. 우리는, 충만했다. 달빛이 흐르는 강(moon river)처럼.



물론, 지금에 감사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나는 주말이면 윗동네를 돌고 싶어 진다.

생필품 이상의 것은 '사치품'이라고 정의 내려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은 빚을 갚느라 허덕일 때만 '위안의 경전'였다. 그러나 조금씩 배부르기 시작하면서 그 경전은 '궁상의 라떼'로 둔갑되어 책장 어딘가에 먼지만 쌓여 처박혀 있다.

수요일 밤마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시청하면서도

주말이면 헛배가 꼬르륵 거려 고고한 윗동네를 관람하러 간다.

나는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요괴가 된 듯 모호한 경계선에서 왔다 갔다 한다.

단지 추구할 뿐, 우아함은 언제나 이렇게 요원하다.


당연히 답은 알고 있다.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쯤은. 설령 가질 수 없었던 것을 소유하게 될지라도 또다시 더 높은 위를 바라보며 동경할 것이라는 것도. 인생은 가질 수 없는 것을 갈구하는 끝없는 소모전 같다. 이미 내 손안에 있는 것은 잊히고 만다.


오드리 헵번의 진정한 우아함은 티파니 앞의 화려한 홀리가 아닌 아프리카에서 아이들과 함께 했던 그 깊은 주름에 있음을 알지 않는가.



아무래도 헛배가 너무 부른 것 같다.

이번 주말에는 <월든> 위의 먼지를 털어내고 윗동네가 아닌 호수공원을 돌아야겠다. 그리고 헵번이 불러준 'Moon river'를 들으며 몰락했던 우리의 예쁜 달을 건져 올려보련다.




그녀가 부르는 <티파니에서 아침을> OST

"Moon River"

https://youtu.be/OIfSOEuvJ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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