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이 말을 연 이틀 들은 뒤였다. 연달아 뒤집어진 마음은 꼬장을 부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몸은 부스스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전기밥솥을 보니 남은 밥이 없다. 계량컵 세 컵의 쌀을 씻어 밥을 안쳤다. 냉장고 안에는 다행히 며칠 전에 사두었던 레토르트 사골곰탕이 있다. 크림색의 국물을 냄비에 부어 팔팔 끓였다. 소금과 후추 통을 그대로 식탁 위에 올려놓고 묵은 김치가 담긴 글라스락의 뚜껑을 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과 뽀얀 사골국물을 그릇에 담아내고 사기로 된 수저 받침대 위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올렸다. 재택근무하는 남편, 온라인 수업을 해야 하는 대학 2학년 딸과 중 1 아들을 위한 삼인분의 아침 식탁이다. 평소의 톤보다는 낮게, 그러나 굵게 '아침 먹어'를 외치니 세 개의 얼굴들이 식탁을 향해온다. 부은 얼굴의 아들이 눈곱을 떼며 나를 본다.
"엄마는요?"
"먼저 먹어"
어색하게 남편과 마주하기 싫어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기분의 무게에 눌려 천장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데 열어놓은 창문으로 찬 바람이 쓰윽 들어왔다. 가을이다.
"아리아! 루시드 폴의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틀어줘!"
"루시드 폴의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들려드릴게요."
언제나 친절한 그녀가 틀어준 음악에 실려 흐르고 있는데 밖에서 딸그락 소리가 났다. 다 먹은 그릇을 설거지 통에 담는 소리다. 좀 더 음악을 듣다가 일어나 세 명이 모두 각자의 할 일을 하러 떠난 식탁을 뒤로하고 설거지를 했다.
마음은 무겁게 꼬였어도 배는 가벼워 '꼬르륵' 소리를 낸다. 젖은 손을 수건으로 닦고 다시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오이와 크림치즈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동네 빵집에서 사 온 유기농, 천연발효 식빵도 있다.
얼마 전 요리 블로그에서 보고 한 번 해 먹어야지 했던 음식이 생각났다. 그래, 오늘 나의, 나만의 아침은 오이 샌드위치다.
오이 샌드위치는 영국에서 오후에 차를 마실 때 곁들였던 간식이란다. 가볍게 먹기 좋겠다.
오이는 얇게 썰어 3분 정도 소금에 절여둔 후 찬물로 살짝 씻고 물기를 꼭 짜서 준비해 놓는다.
구운 식빵 위에 크림치즈를 얇게 바르고(느끼하지 않게) 그 위에 준비한 오이를 올린 후 후추를 살짝 뿌린다. 마요네즈를 그 위에 뿌리기도 한다지만 상큼함을 위해 더하기를 하지 않는다.
얼그레이 티백을 포트에 담고, 한 김이 나간 뜨거운 물을 부어 3분을 우려낸다. 너무 진하지 않게 물을 좀 더 넣은 후 꽃이 그려진 잔에 맑게 따랐다. 우아함을 위해 찻잔을 받침대 위에 놓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꽃은 꽃받침이 필요하니까.
"자기가 그러니까 애가 저러는 거 아냐!"라는 말은,
"집에 있으면서 뭐 하냐!"라는 말과 함께 내게 분노를 일으키는 남편의 말 중 하나이다.
규칙을 엄격하게 강요하는 것이 싫어서 아들의 요구를 조금씩 들어주며 풀어주곤 했는데 남편은 뺀질거리는 아들과 일관성 없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거였다. 아이와 각을 세우면 아이는 멀어지고, 멀어진 만큼 내 목이 캑캑거리는 것이 싫어서 써본 나름의 방편이었는데 말이다. 아이는 혼자 키우는 것도 아닌데 모두 내 탓이란다. 목청을 올리며 다투다침묵한다. 밤이 깊었다.
왜 남자들은 아이가 성에 차지 않으면 아내 탓을 하는지. 아들과 삐걱거릴 때마다 들려오는 남편의 저 말은,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철드시기 전) 가여운 엄마를 향해 퍼부었던 레퍼토리와 흡사해 더욱 분노를 일으킨다. "집구석에서 뭐 하길래 새끼들이 저 모양이야!"라는.
나는 '당신은 밖에서 뭐 하시길래 새끼들이 이 모양이 되도록 방관만 하셨나요' 속으로 외치며 그 시절의 아버지를 미워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 시절은 그리 길지 않았고 두 분은 지금 건강 때문에 서로 잔소리하실 뿐 인생에서 최고로 화목하시다. 엄마는 그렇게도 꼿꼿하고 꼬장꼬장하시던 아버지의 힘없는 어깨를 안쓰러워하시고, 아버지는 엄마가 종합병원인 이유가 다 당신 탓이라며 찬바람이 불 때마다 고해성사를 하신다. 부부의 세월은 애긍을 낳는다.
혼자서, 오로지 음식만을 먹으면 잡념이 생길까 봐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에 접속했다.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에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을 내게 건네준다.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오이의 아삭 거리는 풋내와 후추의 향이 어우러져 낯설지만 담백하고 깔끔하니 좋다. 빵이 입안에서 사라진 후 홍차를 한 모금 마신다. 따뜻한 향이 목을 타고 내려와 가슴을 안에서 밖으로 동그랗게 데워준다. 꼬였던 덩어리가 풀어져 가볍게 흩어진다. '나는 담백하고 따뜻하게 살 거야'라고 생각한다.
담백하고 따뜻한 아침을 먹고 나니 오전 10시다.
딸은 아직도 수업 중인지 방에서 조용하고 아들은 곧 2교시 줌 수업에 들어간다고 욕실에서 머리를 감고 나왔다.
남편이 식탁으로 슬금슬금 와 내 얼굴을 살피며 앞에 앉는다. 거실에서 노트북을 켜고 회사 업무를 하면서도 내 움직임과 소리들이 신경 쓰였을 것이다. 식긴 했지만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홍차를 그에게 따라준다. 희끗한 머리와 두 눈썹 사이에 세로로 그어진 금이 측은하게 내 눈가에 닿았다.
'한 번 규칙을 정했으면 일관되게 나가야지. 그래야 아이도 고쳐나가는 거야.'
'알았어, 노력할게.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 혼자 키우는 게 아니잖아.'
이런 말은 오가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차를 마시다 피식 웃고 만다.
시간이 묵어가면 때로는 침묵(沈默)이 침목(枕木)이 되어부부라는 열차를 안정적으로 달리게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