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아들을 몰래 차별하는 엄마

by 혜나무


아무래도 집에서조차 성별로 차별을 받았던 시대적 트라우마가 내게도 남아있는 것 같다.


어릴 적, 엄마는 노골적은 아니었지만 은근히 장남인 오빠를 많이 챙기셨다. 오빠가 유독 좋아하던 깍두기 김치를 떨어지지 않게 담으셨고 진밥을 싫어하는 오빠를 위해 고슬고슬한 냄비밥을 많이 해주셨다. 엄마가 바쁘셔서 설거지를 못하실 때면 헤비메탈을 들으며 띵가띵가 놀고 있는 오빠는 부르지도 않고 한창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나를 불러내어 설거지를 시키셨다.


나는 그게 항상 억울했는지 얌전히 응하지 않고 만만한 남동생을 부르곤 했다. (오빠는 엄마를 방패 삼아 내 말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기에)

"아, 왜 엄마는 나만 시켜요? 아들딸 차별해요? 야! 욱아 이번엔 네가 해!"

착한 동생은 궁시렁거리면서도 이상하게 내 말을 잘 들었다.


옛날 TV 드라마 '아들과 딸'처럼 극한 차별은 아니어도 집집마다 은근히 딸과 아들을 차별하지 않았을까?

가까운 지인 중에는 부모님께서 아들을 낳기 위해 딸인 지인의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짓고 머리도 남자처럼 짧게만 깎게 해 유년시절 성 정체성에 혼란이 있었다고, 깊게 파인 상처를 보이며 아픈 웃음을 내 비치곤 하신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 희생양 의식이 효력이 있었는지 남동생이 태어났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무수한 딸들의 투쟁과 사회적 인식 개선으로 자식을 성별로 차별하는 것이 구시대적 유물로 되어가고 있지만, 부모님에게서조차 여자라고 차별받았던 설움들은 여전히 얼룩들로 남아있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내게 있어 아들보다는 딸을 은근히 챙기게 되는 것으로 스스로 치유를 꾀하고 있는 듯하다.

딸이 아들보다 허약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고깃국을 국그릇에 담을 때 딸아이에게 고기 몇 덩이 더 주는 나를 발견한다. 아니 어쩌면 그 고깃덩어리가 아들에게 더 가게 되면 아들과 딸을 차별했던 옛날 어머니들의 기울어진 모성이 재현될까 봐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기 못 먹어 서러운 시절도 아닌데 말이다.

이게 다 일그러진 시대상 때문이라고 탓하며 그 예민함을 떨쳐 버리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의식하게 된다.


아직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하신 양가 부모님을 방문할 때면 나의 이 예민함은 더 뾰족해진다.

당신들도 의도치 않게 유전자처럼 박혀 버린 '부엌일은 여자일'이라는 인식 때문에 간혹 실수를 하시기 때문이다.

"남자는 부엌에 오는 거 아니다."

"윤아, 엄마 도와서 식사 차려야지. 그래야 시집가서도 수월하단다. "

할머니들 말씀에 딸이 부엌으로 와서 기웃거리면 나는 TV를 보고 있는 아들도 불러서 숟가락이라도 놓게 한다.

물론 아이들이 부모를 도와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하다. 그러나 딸만, 며느리만 부엌일을 거드는 것은 나로 족하다. 물론 친정에 가서는 아직까지도 남동생을 부려먹긴 하지만.


나름 (스스로) 젠더 감수성이 있다는 남편과 나도 기울어진 차별은 아닐지라도 그 젠더 프레임에 아이들을 가두곤 한다.

"여자애가 옷이 그게 뭐니? "

"사나이가 그렇게 질질 짜서야 되겠어?"

그러나 이러한 얇은 틀 정도에 아이들은 갇히지 않을뿐더러 가벼운 잔소리로 흘리면 그만이다.


문제는, 또 다르게 '기울어진 세상적 잣대'를 내가 아이들에게 들이대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 성적과 선생님의 평가로 만들어진 강력한 자(尺) 말이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알아서 척척해내는 모범생 딸의 말은 즉각 끄덕이며 인정하면서도, 수행평가 과제를 제때 하지 않아 선생님이 전화까지 주시는 아들의 말은 무슨 말을 해도 미심쩍은 듯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다르게 태어났음을 인정하자 하면서도 아들에게 불리한 자로 매번 재고는 걸음이 늦다며 초조해한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은 집 밖을 나서면 무수한 차별 속에 놓일 텐데.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사회에서는 성별, 학벌 등으로 구분되어 판단받고 때로는 일그러진 시선과 불합리한 대우를 받기도 할 것이다. 떨어진 자존감으로 얼마나 많은 얼룩들이 남게 될까.

집에서만큼은, 엄마만큼은 아이들을 세상의 어떠한 잣대로도 재지 말자고, 있는 그대로 예뻐하자고 또 한 번

마음을 다진다. '사랑받고 있다는 충만함'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밖에서 맞는 거센 바람도 기꺼이 맞설 수 있을 테니.


혹시나 나도 모르게 자유로운 아들의 영혼을 재고 딸과 비교하지는 않았는지, 나의 모성이 기울지는 않았는지 의심될 때 아들에게 물어보곤 한다.

"아들, 엄마가 너를 누나랑 차별하는 것 같은 느낌 받은 적 있어?"

"네 있어요, 제발 제게 관심 좀 거두어 주세요, 누나에게도 관심 좀 나눠 주시라고요!"

여드름이 농익어 가는 아들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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