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에 대한 남편의 진심

밥 너머의 의미 - # 헐거워지는 시간들

by 혜나무


"더 자, 내가 알아서 먹고 갈게."


핸드폰 알람 소리에 부스럭대자 그가 일어나며 말했다. 이 말을 듣고는 3초 정도 생각하다가 부스스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조간신문을 들고 화장실을 간다. 삼일에 한 번 가면 성공인 나는 그의 정확하고도 활발한 장 활동이 늘 부럽다. 그가 화장실에 가서 신문과 볼 일을 보는 동안 나는 멍한 눈으로 아침을 준비한다. 오늘은 계란 토스트와 두유, 사과 한 알이다. 아침거리는 전날 밤에 미리 그에게 알려주고 동의를 구한다. 그는 아침에는 밥보다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한입거리를 선호하는 편이다.



맞벌이 시절에는 아이들을 챙기고 출근 준비하느라 아침은 각자 알아서 먹었다. 아이들용으로 만들어 놓은 주먹밥 같은 것을 먹거나 우유에 토스트 혹은 시리얼로 대충 때우는 식이였다. 그 당시 동료 여직원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했는데 평소 깍쟁이였던 한 여직원이 '새벽에 일어나 국이 있는 한상을 차려준다'라고 뻐겼다. 모두들 '정말 남편을 사랑하나 보다'하고 웃어넘겼지만 내가 그 장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래서였을까. 퇴사를 하면서 남편에게 '아침마다 따끈한 된장국 끓여서 밥해 줄게'라고 제일 먼저 공약했다.

1년 정도는 20여 년 만에 누리게 된 자유에 취해 신나게 공약을 실행했다. 평일 아침에도 네 식구가 국이 있는 아침밥을 먹는 풍경은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단지, 간단히 먹고 싶다는 그의 기특한 요구를 반영하여 가끔 빵이나 떡 같이 간단한 것을 내주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코로나로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가게 되자 아침에 반드시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긴장감이 풀렸다. 감격과 초심은 오래가지 못하는 것들의 대표적 주자일 것이다. 게다가 갱년기 증상인지 운동량이 적어서 그런지 깊은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날이 늘어가고 있다. 밤새 뒤척이다 새벽에 겨우 잠든 날 아침이면 남편에게 '우유에 시리얼 말아먹을래?' 하며 양해를 구하고 부족한 잠을 마저 청한다. 그렇게 한 두 번 반복이 되더니 요즘은 아예 그가 출근하는 모습도 못 보고 계속 잘 때도 있다.


그는 아침을 간단히 먹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고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나의 상태를 이해하는 터라 '알아서 먹을게'라는 말은 진심일 것이다. 저녁 설거지를 부탁하지 않아도 '소화도 시킬 겸 내가 할게' 하며 후다닥 해치우기도 하는 사람이니까. 맞벌이할 때뿐만 아니라 내가 회사를 그만둔 지금도 그는 여전히 자발적으로 설거지나 집안 청소를 같이 한다.


그러나 그의 저 말은 또한 진심이 아니기도 하다. 평상시에는 별 말이 없다가, 다투기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자기가 언제 아침을 제대로 차려줘 봤냐'라고 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싸울 때마다 같은 공격을 반복한다는 것은 그의 깊은 곳에서는 내가 아침밥을 차려주지 않았던 것에 대한 오래된 서운함이 끙끙거리고 있던 거다. 자기가 알아서 먹고 가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너그럽던 남편의 멋짐이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했지만 그의 바람을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직장 상사 중에 부인 자랑을 은근히 즐겨하는 분이 계셨다. 어느 날은 '어제 마누라하고 싸웠는데 그래도 오늘 아침밥은 차려주더라'라고 해서 남자 직원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우리 엄마도 그러셨다. 밤새 아버지와 다투는 소리에 잠을 설쳤었는데 이튿날 엄마께서 어김없이 아침을 지으시는 소리에 안심하곤 했다.



그가 화장실에서 나와 식탁에 앉았다. 나도 졸린 눈을 하고 그 앞에 앉는다.


"내가 알아서 먹는다니까..."

"더 자, 라는 말은 진심 아니지."

"진심이야, 요즘 잠 못 잔다며."

"그런데 왜 싸울 때마다 아침밥 타령했어?"

".... 있어, 그런 거. "



'그런 거'


부부 사이에 '아침밥'은 단순한 밥의 의미를 너머 상대방을 아끼고 존중한다는 표징인 것이다.

흔히 어머니들께서 '내 아들이 아침밥은 제대로 얻어먹고 다니나' 걱정하시는 것은 당신 아들이 부인에게 존중받고 있는가를 염려하시는 말이리라. 맞벌이할 때도 '아침밥'에 대해 의식하고 있기는 했지만 여유가 없었고, '왜 같이 일하는데 여자만 밥을 차려서 받쳐야 하나'라는 생각 때문에 일부러 신경 쓰지 않기도 했다. 주도권을 다투던 때의 일이다.


지금은 내가 일을 하지 않으니 아프지만 않으면 그에게 아침밥을 차려주는 것은 도리이다. 반대의 경우도 같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하는 세월을 지나왔는데 내가 너무 했다 싶었다. 그가 거한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는데. 진심이기도 하면서 진심이 아니기도 한 남편의 말. 행간을 읽으려 하지 않은 것은 나의 나태함이다. 퇴근한 그의 충혈된 눈을 보고 더욱 미안했다. 그래서 그의 '알아서 먹을게'라는 말에 속지 않기로 했다. 물론 그의 배려는 뭉클하지만.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닌 사랑받고 존중받고 있다는 충만함으로 사는 것인데 말이다.

이다음에 다툴 때는 그가 아침밥으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내가 깔끔한 승리를 얻어낼 수 있도록 다시 긴장하기로 했다. 불면의 밤은 낮에 보상해 주면 되는 거니까.


아침밥은 이제서야 내게 있어 싸움의 기술이요, 사랑의 기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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