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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Feb 05. 2021

소란이 있기에 고요는 달콤하다

외로움이 그리울 무렵 -#헐거워지는 시간들

빛, 고요



흰색의 격자무늬 창틀을 지닌 창문 사이로 들어온 빛이 옅은 어둠이 깔려있는 실내 바닥에 슬며시 앉았다. 빛 그림자가 드리운 실내에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이 창가 왼쪽에 놓인 갈색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아있다. 그녀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은 그녀의 등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여인은 들어온 빛을 마주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빛은 여인을, 여인은 빛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서로 방해하지 않고 비스듬히 비켜서 있다.

창문 오른쪽 벽에는 방문이 있으나 그 따뜻한 고요를 깨고 누군가 들어올 것 같지는 않다. 아직까지는.


여인이 입고 있는 검은색 드레스 때문일까. 숙여진 고개로 드러난 뒷 목덜미에 시선이 머문다.

외로운, 혹은 조용한 그 목덜미를 빛이, 옆에서 묵묵히 지켜주고 있다. 고요를 지켜주고 있다.




5년 전 가족을 떠나 홀로 강릉에 머문 적이 있었다. 80년대에 지어진 낡은 사택은 습하고 그늘진 벌레들이 원주민이었다. 쌀 봉지로 날아들어 번식을 하려는 나방은 페로몬 트랩으로 없애고, 어둑한 저녁이면 몇 개인지 모를 발들을 스스슥 거리며 나타나는 그리마(돈벌레)들은 에프킬라로 녹여버렸다. 한 달여 지나자 나방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그리마들은 줄지 않고 네다섯 마리씩 모여서 나타났다. 가족인 것 같아 내버려 두었다.


강릉 시내에 새로 지은 오피스텔을 회사에서 매입을 했다. 많은 직원들이 그곳으로 옮겨갔으나 나는 그대로 머물렀다. 그 낡은 사택은 가구며 가전이 추어져 있는 반면 오피스텔은 모두 새로 구매해야 했고 굳이 지척에 있는 회사를 두고 멀리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북적거리던 사택은 서서히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닌 몇몇 사람만 남게 되었다.


금요일 저녁이면 그리마들에게 사택을 기고 고속버스를 타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엄마가 없어도 잘만 지내고 있는 아이들이 고마우면서도 서운했고 남편은  시절처럼 애틋하기도 했다. 맛집과 분위기 있는 카페 투어가 당시 우리 가족의 주말 루틴이었다. 그렇게 단꿈처럼 주말을 보내고 가족들이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는 강릉행 버스를 오를 때의 기분이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러나 홀로 있던 그곳에서 전혀 다른 파동의 외로움도 만났다.


어느 봄날이었다. 토요일 당직이 있어 집에 가지 못하고 사택에 머문 일요일 아침. 얼마 남지 않은 직원들조차 썰물처럼 제각기 자신들의 본가로 가 작은 봄새만 간간이 훌쩍이던.

눈을 떴다. 침대 위 작은 창가로 들어온 맑은 빛이 다소곳이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새소리에 깬 줄 알았지만 빛이 들어와 놓이는 기척 때문이었다. 순간 세상에서 가장 투명한 공간과 흐르지 않는 시간에 온전히 합일된 나를 느꼈다. 절대적 고요와 함께 있는, 충만함이라 불릴만한 것이었다. 구름이 짙게 흐르고 있었다면 기억에 없을, 빛만이 나를 바라봐 주어  새롭게 명명되었던 아침. 한참을 그대로 누워있다 일어나 커피를 내렸다. 홀로 있어 완벽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주부를 전업으로 하게 되면서 가장 감사한 것은 나만의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오전 11시까지의 시간은 조용히 설렜다. 남편과 아이들을 모두 가야 할 곳으로 보내 놓으면 가만히 들어오는 것들, 빛과 고요를 맞이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공간이 늘 북적이니 빛조차 산란된다. 강릉에 있으며 외롭다 징징거릴 때마다 홀로 있는 시간을 후회 없이 누리라 했던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그리워질 거라 했는데 그랬다. 지나니 외로움도 그리움이 되었다.


허나,


홀로 있는 시간이 달콤한 이유는 다시 돌아와 공간을 채울 나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 그림 속 흰 목덜미의 여인도 그리 고독해 보이지 않는 것은 낮에는 빛이, 그리고 언제고 열릴 방문이 있기 때문이다.

소란이 있기에 고요는 달콤하다.





그림 :  Vilhelm Hammershøi/

Interior from Strandgade with Sunlight on the Floor, 1901, o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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