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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Apr 14. 2021

부부의 딴 주머니, 필요합니다만

알고도 모르는 척, 그 모호한 돈의 쓸모에 대하여


나를 위한 돈을 쓸 때 남편은 준 적도 없다는 눈치를 보게 된다. 퇴사 후 가계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기에 지출을 최소화하고 있다. 나갈 일 별로 없으니 새 옷도 필요 없고 사치품에 대한 욕망은 진즉에 사라졌다. 그런데 좀 큰돈을 써야 할 일이 생겼다.



백세시대, 그 절반의 나이를 통과하고 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기에 무언가 일을 벌이고픈 (성장하고픈) 욕망이 생긴다. 그러나 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 자금이 필요하다. 결혼 전부터 '은퇴 후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싶을 때' 쓰기 위해 마련해둔 통장이 하나 있다. 결혼 후 남편과 돈을 공동으로 관리하게 되었지만 이 계좌만큼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파트 대출금을 갚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느라 한동안 그 계좌에 돈을 넣지 못했다.


빚을 갚고 어느 정도 호봉이 높아지자 여윳돈이 생기기 시작했다. 성과급이 들어올 때면 일, 이십 만원씩 그 비상금 계좌로 넣었다. '남편 몰래'라는 수식어에 새 가슴이 되어 떨리기도 했다. 지금은 돈 벌 때 좀 더 통 크게 넣어둘 걸 하는 후회가 있다. 남편에게도 딴 주머니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술, 담배도 하지 않고 군 생활할 때 나온 쥐꼬리 월급도 쓰지 않고 모아 복학 후 학비에 보탠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모른 척했다.


퇴직연금 관리를 위해 남편과 은행을 갔다. 그의 주거래 은행이었다. 그곳에서 남편의 딴 주머니 규모를 알게 되었다. 내가 떨면서 챙긴 딴 주머니는 코흘리개의 것이었다. 나와 공동으로 넣었던 펀드 외에 내가 모르는 투자를 하고 있었다. 그가 당당하게 자신의 비자금을 공개한 것은  실적을 자랑하고 싶어서였으리라. 겉으로는 '왜 나 모르게 했냐'라며 삐진 척했지만 입은 찢어지려 해 곤혹스러웠다.

나도 딴 주머니가 있음을 그에게 알렸다. 결혼 전부터 모아 온 것이고 허투루 쓰지도 않아 떳떳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 


"알고 있어. 얼마 있는지 말 안 해도 돼."


역시, 멋진 남자.



아버지가 퇴직하시면서 엄마는 아버지께 모든 경제권을 넘기셨었다. 돈이라도 쥐고 계셔야 은퇴 후에 오는 허무의 무게를 견디실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후회하고 계신다. 돈을 쓸 때마다 아버지께서 일일이 간섭하시니 말이다. 그래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언니와 나는 아버지 몰래 엄마께 별도의 용돈을 드리곤 한다. 이 돈의 출처 또한 언니나 나나 딴 주머니에서 나오기도 한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회사 급여에서 개인적 공제가 가능했다. 공무를 맡았던 시절, 부서장은 이름만 올린 테니스 동아리 월 공제비로 회비 3만 원에 이십만 원을 더해 공제를 신청해 달라 했다. 급여가 곧바로 통장으로 들어가니 만져보지도 못하고 부인 수중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부서장 말고도 꽤 많은 남자 선배들이 같은 수법을 이용했다. 급여 공제는 비자금을 조성할 수 있는 거의 완벽한 루트였다.



딴 주머니의 심리

경제권을 가진 자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는 것은 슬프지만 실이다. 영혼마저 구속되는 것도 같다. 그래서 아이들도 빨리 독립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비교적 소통이 잘 되는 부부이긴 하지만 서로를 감시하기도 한다. 맞벌이 시절에는 각자 알아서 쓰되 한 건에 십만 원이 넘으면 서로의 합의를 구하기로 했었다. 외벌이가 된 후로는 남편의 카드를 쓰는데 쓰는 족족 실시간으로 그에게 전달되니 예기치 않은 잔소리도 날아온다. 내가 어련히 알아서 할까.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필요하다. 그의 잔소리가 들릴만한 소비를 하게 될 때면(예를 들면 오만 원 이상의 책 구매라던가, 주로 빌려서 보는데 소장하고픈 책들이 너무 많다) 아깝기는 하지만 내 딴 주머니를 꺼낸다.


딴 주머니의 윤리

딴 주머니는 당연히 여윳돈으로 채워야 하며 부끄럽지 않은 곳에 써야 한다.

직장에서는 특히 남자 직원들이 비상금을 챙겼었다. 부인에게 카드를 뺏겨서, 술을 자유롭게 먹기 위해,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싶어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동아리 회비 공제 내역을 부풀려 신청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서로들 딴 주머니의 용도를 밝히며 시시덕거렸다. 그들을 보며 내 남편도 딴 주머니가 있겠거니 생각했다.

딴 주머니는 작은 주머니이어야 한다. 용돈을 아끼거나 없어도 티 나지 않을 정도의 돈으로 채워야 한다. 무엇보다 사용처가 중요하다. 나중에 밝혀지더라도 결코 부끄럽지 않도록.

남편의 딴 주머니는 배가가 되어 내 입을 찢어지게 했지만 규모가 다소 컸기에 내게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잔소리 다발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더욱 잘 운용하시라.


딴 주머니의 미학(옹호론)

서로가 온전히 신뢰하고, 온전히 이해한다면 딴 주머니는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온전함'이란 불가능하다.

남편은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지만 온전하지 않기에 나의 꿈들을 한때 지나가는 봄바람이라 여긴다.

나 또한 남편을 신뢰하지만 명품 시계를 바라보며 꿈틀거리는 그의 눈동자를 이해할 수 없다.

얼마 있지 않아 내 딴 주머니는 가벼워질 것이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기로 했다.  이러한 바람을 남편에게도 말했다. 그는 '책이나 유튜브로 충분하지 않냐'라며 부정적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제대로 배우고 싶고 가능하면 전문 자격도 얻고 싶다. 나는 나를 키우고 싶다.

남편이 은퇴 후 배우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지지할 것이다. (내 주머니는 작으니 본인 주머니를 쓰게 되겠지만). 말이 나왔으니 남편을 위한 딴 주머니도 하나 만들어야겠다. 그가 은퇴하는 날 그렇게 흠모하던 시계를 짠! 하고 선물하련다.(그리 고가가 아니기에).



부부는 요상한 관계라서 '따로 또 같이'의 유연함이 필요하다. 시간이 그러하며 돈 역시 그러하다.

하나가 되기 위해 만났지만 홀로 선 둘이 만났기에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망상이다. 알고도 모른 척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딴 주머니'는 서로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며, 이러한 관계를 긍정하는 표적((表迹)이 될 수 있다. 너무 큰 비약일까.


글을 쓰다 보니 하고 싶은 공부들이 하나 둘 더 늘어간다. 일단은 가장 깊게 꽂힌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물론 원하는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돈 때문에 주저하지 않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부디 내 딴 주머니가 제 목적을 달성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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