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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Jul 17. 2020

왜 전에 다니던 회사를 자꾸 검색해?

퇴사 후의 미련

회사를 그만둔 지 2년이 되어간다.

나올 때는 너무너무 시원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죽을 만큼 싫었던 회사 생활에 미련이 생길 때가 있다.


전에 다니던 회사는 고질적이며 해결하기 힘든 구멍이 있었다. 나는 그 구멍을 메우다 삶이 피폐해졌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상황으로 외로움이 더해져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살기 위해 뛰쳐나왔다. 겪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조직은 냉정하고 잔혹하다. 어떤 일이 터지면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개인을 희생시킨다. 전임자들이 벌여놓은 그 구멍을 막아내기에는 그 크기가 너무 컸고 나는 너무 작았다. 언젠가는 그 구멍이 메워지지 못하고 터져버릴 거라며 남편에게 퇴사의 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들네미의 자유롭지만 불안한 유영이 퇴사의 한몫을 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도망치듯 나와버린 직장이 나 없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거의 한 달에 서너 번은 초록창에 그 회사 이름을 입력하고 기다린다. 무엇을? 나쁜 소식을.

그러나 매번 나의 이 심술궂은 기대는 어긋난다. 아무 일 없다. 아니 잘 나간다. 무슨 무슨 상을 받았고, 어디 어디에 기부를 했으며, 무엇 무엇을 선도하고 있단다.

한심한 듯 그리고 무심하게 남편이 한마디 한다.

"아무 일도 없잖아, 겁쟁이..... "

"아니야, 언젠가는 뭔 일이 날겨."


그 '언젠가는'이 2년이 다 돼간다.

얼마 전에는 그 회사가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나왔다. 또 무슨 상을 받았다. 사진 속 인물들도 대부분 내가 아는 선후배들이다. 옆에서 남편이 불을 지핀다. 올해 그 회사가 경영평가에서 A를 받았다고.

나는 비겁하고 못난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내가 도망쳐 나온 자리에서 누군가 그 일을 해내고 잘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깜'이 못되었을 뿐, 회사는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고 심지어 잘 나가고 있다. 경영평가에서 A를 받았다면 성과급이 두둑할 것이다. 누구는 차를 바꿀 것이고, 누구는 명품을 살 것이며, 누구는 소고기를 먹을 것이다.


소고기.

내가 직장을 그만두며 생활비가 반토막이 났으므로 이전의 생활습관을 바꿔나가야 했다. 특히 먹거리를.

소고기를 좋아하는 딸아이가 스테이크 타령이다. 이제 한우를 먹으려면 큰 마음부터 먹어야한다. 미국산을 혐오하는 나는 호주산으로 준비한다. 호주산도 스테이크용은 만만치 않게 비싸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퇴사 후 외식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나를 위한 소비는 책을 사보는 것 외에는 거의 없다. 내가 회사를 견디지 못하고 나와버려 전의 여유 있는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일 것이다. 솔직히, 슬프다.


나의 퇴사는 해피엔딩이어야 한다. '그래 회사 잘 나왔어, 있었으면 큰 일 날 뻔했다.'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찌질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이 정도의 깜냥밖에 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러다 가끔 전 직장 동료들로부터 힘들다는 문자를 받을 때면 내심 뿌듯(?)해 한다.

"선배님 부러워요, 프로필 사진 보니 좋아 보이세요. 저도 벗어나고 싶어요..."

" 차장님, 요즘 우리 사업소 장난 아니에요, 모두 힘들어서."

나는 점잖을 빼며 답신을 한다.

"그래도 잘 버티세요. 좋은 회사잖아요. 나오면 자유롭지만 그 대가도 만만치 않답니다."


그래, 나 스스로 회사 생활의 답을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버티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선택했으나 가끔은 우울한 현재의 생활에 대한 답도 이미 알고 있다. "현실에 충실할 것".

남편 덕에 퇴사도 할 수 있었으니.

매일 지쳐 저녁뉴스를 보다 곯아떨어지는 남편을 보며 혼잣말한다. '조금만 더 고생해줘. 아이들 다 크면 시골에 조그마한 집 하나 짓고 햇살 좇아가며 낮잠 자고 책 읽자고. 뒷마당에 쏴아 바람 소리 나는 대나무도 키우고.'

일주일이 후딱 지나간다는 말을 이제 남편에게 하지 않으려 한다. 그는 하루가 일주일 같을 것이니.

이제는 아이들이 커서 엄마의 손보다는 잔소리만 필요로 하기에 비교적 시간이 넉넉하다. 그 시간에 좋아하는 책을 보고 이렇게 글을 쓰며 쌓인 것들을 털어낸다. 툭툭.


그동안의 못된 심보를, 자격지심을 글로 쓰고 털어내니 한결 가볍다. 서걱거리던 마음의 모난 들이 조금은 둥그러진 것 같다. 글을 써 무엇하냐고 외면하다가도 이렇게 하얀 모니터 앞에 앉아 마주하고 있으면 내가 써진다. 못난 내가. 이러구러 살아가려는 내가 고요히 정리가 된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한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뽑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다. 내게는 회사에서 젊음을 바쳐 일할 때가 있었고 지금은 그것을 거두고 새로운 나를 찾는 때인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어서 때로는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거기까지가 정해진 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니던 회사가 잘못되어서 나의 퇴사가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한들 내게 무슨 득이 있을까. 잠시 못된 심보를 만족시키는 것이 다일 텐데. 동거 동락했던 동료들은 어쩌라고. 참 못났다.

나는 더 이상 미련을 거두어야 한다. 이제 주어진 시간 속에서 또 다른 꽃을 피워야 한다.


꽃은 한 번만 피는 것이 아니다. 모든 꽃나무는 매년 기적처럼 새로운 꽃을, 작년과 유사해 보이지만 결코 같지 않은 신선한 꽃을 피우기 마련이다. 작년에 피었던 꽃만 동경하고 있느라 올해 필 꽃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 강신주 《감정수업》 중 -


지난날의 연봉과 간판에 대한 부질없는 동경은 싹둑 잘라버리고 욕심 없이, 수채화 같은 맑은 꽃을 피우고 싶다. 그러려고 떠나왔지 않은가. 

가자. 초록보다 더 짙푸른 나무가 되자. 멈추지만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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