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나무 Dec 15. 2020

카톡 말고 라면

사춘기 아들 마음 엿보기


조용한 오후다. 학원 숙제를 한다고 방으로 들어간 아들이 한 시간째 조용하다. 뒷 베란다로 살금살금 나가 허리를 굽히고 아들 방 안기웃거린다. 블라인드 너머로 아들의 모습이 보인다. 실루엣을 보니 여지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양새다. 엄청 집중하고 있다. 진짜로 공부할 때는 거의 10분마다 한 번씩 나와 배가 고프다며 냉장고를 여는 녀석인데 말이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들락날락한다. 여자 친구와 대화하고 있나? 혹시 야동 보고 있는 거 아냐? 아냐, 막아놨는데?

몇 달 전 지인으로부터 고 3인 자기 아들이 경찰서에 불려 갔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문자 메시지로 온 이상한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낚인 모양이다. 불안하다. 도대체 나의 아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카톡 내용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답답한 마음에 말해줄 리도 없는 질문을 일부러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하는 것 같다.

"아들, 너는 스마트폰으로 뭐 하니?"

"뭘 그런 걸 물어봐요."



코로나 방역단계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학원들이 일제히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했다. 선생님들이 카톡을 통해 화상강의 주소를 보내주시면 아이는 그 링크를 타고 수업에 참여한다. 거실에 놓여있는 데스크톱 컴퓨터 책상이 비좁다.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놓을 공간이 없어 내 노트북으로 식탁에서 수업을 받으라고 했다. 역시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볼 때가 심신이 가장 안정되고 흐뭇하다.


아들의 온라인 수업이 끝나고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안방 내 책상으로 가져왔다. 핸드폰을 충전하고 있어 PC용 카카오톡에 비밀번호를 넣고 로그인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카톡 채팅방 화면이 낯설다. 이름들을 보니 앗! 아들의 카톡접속한 것이다. 조금 전에 아들이 카톡을 통해 강의에 들어가려고 입력해 놓았던 아이디를 내 것으로 변경하지 않고 비밀번호만 입력하고 들어왔던 것이다. 녀석의 카톡 비밀번호가 내 비밀번호와 같단 말인가! 내 카톡의 비밀번호는 아들의 이름과 생일을 조합한 것인데, 울 아드님 참 단순도 하지. 이게 웬 떡이냐!


심장이 음흉하게 두근거렸다. 그래 드디어 너의 비밀을 알게 되는구나. 도대체 친구들과 무슨 말을 주고받는고. 이제 네 여자 친구의 정체를 알게 되는구나, 어흑!


두근두근, 첫 번째 단톡 방을 클릭한다. 학급 단톡 방이다. ㅋㅋ, ㅎㅎ, ㅎㄷㄷ... 자음들이 난무한 세상이다. 흠, 별거 없군.

두 번째 방을 클릭한다. 이름들을 보니 축구와 게임을 같이 하는 절친들이다. 이곳도 자음들로 가득하다. 어떤 녀석이 욕을 섞긴 했지만 심하지는 않았다. 축구 게임 계정을 공유해 달라, 호날두가 어쩌고, 게임 아이템이 저쩌고.

어라, 내가 기대했던(?) 대화들이 없다. 그다음 방은 가족 톡방이다.


그런데 마음 미묘했다. 

그렇게 궁금했던 아이의 사적인 공간, 그러나 막상 보니 별거 없는 아이의 카톡 문자들을 찬찬히 스크롤하면서 안심이 되면서도 착잡했다. 도대체 나는 왜 아들을 보면서 불안해하는 걸까. 


 '사춘기(思春期)'라는, 이제 막 시작된 봄 속에 올라온 꽃봉오리를 보며 꽃이 제대로 피지 않을까 봐, 진딧물이 낄까 봐 미리 걱정하고 지레짐작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알 수 없는 계절이라고 수군대는 말들에 팔랑귀가 되어 오만가지 상황들을 시뮬레이션하면서 불안에 떨고 있었다.


설령 내가 두려워하는 문자들로 아이 카톡방이 가득했다 치자. 아들의 여자 친구 정체를 알았다 치자. '내가 너의 카톡을 보았노라'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심각한 상황이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나는 더욱 불안에 떨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아이의 카톡을 보려 하겠지.

그러다 아이에게 들키면 그렇지 않아도 긴가민가 하는 엄마에 대한 아이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그동안 아이의 등을 토닥'아들, 너 믿는다'라고 했던  나의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한 포장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톡방이 더 남아 있었지만 그냥 두는 편을 택했다. 로그아웃 하는데 때마침 아들이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섰다.    뻔했다.

"엄마, 공부를 너무 열심히 했는지 배가 고파요. 라면 하나 끓여주세요." 

그러더니 내 노트북을 흘깃 보면서 말한다.

"그런데 엄마, 요즘 글 쓰는 주제가 뭐예요?"

"으응? ... 뭐 여러 가지..(너도)."

"글 쓰는 것도 좋지만 운동 좀 해요, 엄마. 그러니까 오십견이 오는 거예요."


이쁜 것. 이제껏 우리 집에서 내 글쓰기의 주제를 물어본 사람은 아들밖에 다. 저렇게 살가운 아이, 엄마의 안부를 살피는 아이 뒤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아들이 좋아하는 순한 라면을 끓여 김장 김치와 함께 내어주었다. 뜨끈한 라면 앞에서 아이의 마음은 말랑해지기 마련이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요즘 어때? 고민 같은 거 있어?"

"대체로 없긴 한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 커서 뭘 해야 하나 모르겠어서 가끔 고민이 되긴 해요."

녀석, 아무 생각도 없는 줄 알았더니만. 얼마 전 어디서 읽은 생각나 멋지게 말해 주었다.

"지금은 모르는 게 당연하지, 미래의 너는 미래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대신 발판은 마련하고 있어야 해. 일단 공부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소리야."

"엄마! 잘 가시다가 또..."

"알았어, 알았어. 뒷 말은 취소. 식기 전에 어서 먹어."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라면 위에 김치를 하나 올려 주었다.



혹여 사춘기 아이가 큰 비밀을 감추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은밀한 관심 대신 아이가 일상에서 하는 작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 보세요.... 아이에게 자잘한 이야기를 날마다 들을 수 있다면 그 아이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강금주 - 십 대들의 쪽지 발행인)




매거진의 이전글 "차라리 엄마가 화내고 혼내야 마음이 편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