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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Nov 11. 2020

"차라리 엄마가 화내고 혼내야 마음이 편해요."

라고 사춘기 아들이 말했다.


"어머니, 찬이 집에서 출발했나요? 아직 학원에 오지 않아서요."

"네? 학교 끝나고 곧바로 학원에 간다고 했는데. 한 시간이나 지났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전화해 볼게요."


수학 학원 선생님의 발신번호가 핸드폰에 뜨면 '아.. 또'라는 김 빠지는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온다. 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물론 받지 않는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녀석은 항상 휴대폰을 '방해금지' 모드로 해놓고 있다. 즉각 받을 리가 없다. 나는 문자를 넣는다. '전화받아라.'

희한하게도 문자를 넣으면 5분이 지나지 않아 전화가 온다. 문자는 수시로 확인하고 있는가 보다.

온라인 수업 시 출석 댓글을 달지 않아서 청소 벌칙을 받고, 조금 늦게 끝날 것 같아 학원 선생님께는 전화를 드렸단다.


"청소 몇 시에 끝났어?"

"410분이요."

"지금 몇 시야."

"5시요."

"그럼 청소 끝나자마자 학원을 갔어야지! 뭐 했어!"

"친구들하고 놀았어요."

"너 정말! 일단 알았어. 어서 학원가!"


한 시간 늦게 학원에 갔으니 규칙에 따라 한 시간 늦게 수업이 끝났다. 저녁 8시가 조금 넘어서 아들이 집으로 왔다.


"다녀왔습니다."

"응, 손 씻어."


방문을 열고 인사하는 아들은 쳐다보지 않은 채 짤막하게 대답한다. 잔소리하는 것도 지쳤다.


8시 반이다. 아들은 배가 고플 것이다. 오후 간식으로 삼각 김밥을 5개나 먹는, 한창 먹성이 좋은 녀석이 조용하다. 남편이 지켜보다 묻는다.


"저녁 안 줘?"

"응, 굶길 거야."

"그래, 좀 굶어봐야 돼."


이 말은 또 서운하다. 내가 굶긴다고 해도 '그래도 밥은 먹여야지'라는 반응을 기대했었는데 말이다. 나는 10분을 참지 못하고 주방으로 나간다.

아들이 요즘 꽂혀있는 카레 볶음밥을 만든다. 감자, 양파, 당근, 닭가슴살을 잘게 다져서 하얀 밥과 얼마간 볶은 후 '약간 매운맛' 카레 가루를 뿌리고 마저 볶는다. 마지막으로 참깨 뿌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밥 먹으라고 부르니 아들이 쭈뼛거리며 나온다.


"배 안 고픈데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어서 먹어."


나도 식탁 의자를 빼서 아들 앞에 앉는다. 녀석은 얼굴을 접시에 박고 허겁지겁 먹는다. 두 공기는 넘음직한 카레 볶음밥을 얼마 전 새롭게 담근 무 피클과 함께 후딱 먹어치운다.


"정말 배 안 고팠어?"

"네, 엄마가 아무 말 안 하니 배가 안 고프더라고요."

"엄마가 뭐라고 해야 하는데?"

"저는 차라리 엄마가 화내고 혼내야 마음이 편해요."

"응?"

"혼나면 기분은 나쁘지만 내 잘못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한 것 같아 후련해요. 그런데 엄마가 혼내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찜찜하고 불편해요."


헉! 순간 놀랐다. 내가 구독하는 한 작가님의 브런치 북에서 읽었던 '탕감 효과'의 내용을 아들이 그대로 읊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들이 브런치 글을 읽었을 리는 만무하고 내가 '설마' 하며 흘렸던 것을 아들이 손수 주워서 챙겨주고 있었다.

아이의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하면서 큰 소리로 화를 내고 다그치면, 아이는 그 비난을 자신의 잘못에 대한 대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후회나 반성은커녕 의무를 다한 해방감을 느낀다고.

아이가 얕은 거짓말을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참을성 없는 나 때문 일 수도 있겠구나, 후우.


'차라리 혼나는 게 낫다'라는 풀 죽은 아들을 물끄러미 본다. 아들과 더 이야기하고 싶어 밥 먹은 것을 치우고 사과를 아 놓는다. 아들도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사과 한 조각을 집어 든다. 나와 더 이야기하고 싶다는 신호다.


"며칠 전에 엄마가 화나서 나보고 집에서 나가라고 했을 때 정말 나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왜 안 나갔어?"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나서요."


그랬다. 아이와 한 참 싸운 후 화해하면서 "엄마가 나가라고 해도 그건 진짜로 나가라는 소리가 아니야. 나중에 또 엄마가 화가 나서 나가라고 하면 '엄마가 화가 많이 나셨구나, 정말 나가라는 소리는 아니다'라고 생각해줘. 알았지? 꼭이야! 세상에 어떤 엄마도 아이가 집을 나가는 것을 하는 엄마는 없단다."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화가 나면 '하이드 씨'가 되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퍼붇게 되기에 '안전장치'를 해 놓았던 것이다. 고맙게도 아들은 내 말을 깊이 기억하고 있었다.


"맞아, 울 아들 다 컸네. 엄마 마음도 알아주고." 하고는 아이의 까치집 머리를 부슬부슬 쓸어주었다.

"엄마, 배가 덜 찼어요. 참치 마요 삼각 김밥 만들어 주세요."

"헉, 뙈지. 알았어."


나는 참치 캔을 딴다. 


아들이 다섯 살 때였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벌을 주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이 손목에 전자시계를 채워주고 5분 동안 밖에 서있으라고 했다. 아이는 울먹이면서도 나갔다. 처음으로 집 밖에 혼자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아파트 현관문의 작은 렌즈 구멍을 통해 아들을 지켜봤다. 아이는 문에 바짝 붙어서는 아파트 계단을 봤다가 닫힌 문을 봤다가 손목의 시계를 봤다가 하면서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아이는 얼마나 불안할까. 마음이 너무 아팠다(지금 떠올려도 아프다). 얼른 문을 열고 아이를 들이고 싶었지만 정해놓은 규칙을 흐지부지해버린다면 훈육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참았다. 5분이 50분 같았다. 그 뒤로 문 밖에 세우는 체벌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에게 그분(사춘기)이 오면서 내 입은 '너 나가'를 종종 종처럼 땡땡거린다. 그때마다 진짜 나갈까 봐 조마조마하다. 다행히 아직까지 나가는 일은 없었다. 언제까지 아이가 내가 설치해 놓은 안전장치를 신뢰할지 모르겠다. 화를 이기지 못하고 훈육이 아닌 부모라는 권력을 이용해 '갑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약자인) 아이를 갈 곳 없는 곳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현관문 밖에서 다섯 살 아들이 무구한 불안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그래 내 새끼.... 엄마가 노력할게. 


활동적인 녀석이 얼마나 놀고 싶을까. 주말도 부족하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한 번 놓아줘보라고, 인생 선배들이 말씀을 하지만 솔직히 난 그 '한 번'이 몹시 두렵고 불안하다.  번이 두 번이 되고 공이 저 멀리 가버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나 용기를 내보려 한다. 아이가 마음을 닫고 스스로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잔소리보다 참는 것이 더 어렵다. 나 편하자고 잔소리를 해댄 거였다. 화를 잠재우고, 입을 오므려야 한다. 그러면 아이는 불편해서라도 마음을 열겠지. 입을 닫지 않겠지.

그것이 가장 안전한 '안전장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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