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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Jul 23. 2020

아들아 봄 맞으러 가자

아이가 내 어깨쯤 컸을 때까지만 해도 발등에 아이 발을 얹히고 꼭 껴안고는 영화 <닥터 지바고>의 '라라의 테마'를 흥얼거리며 춤을 추곤 했다. 아이는 나의 과장된 몸짓과 표정 그리고 엄마 발에 얹혀 빙빙 도는 것이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나와 눈을 마주치고 그 시간을 행복해했다.


그러나 나와 키가 같아지던 때부터였을까? 엄마인 내 손을 잡으려 하지도 않는다. 어릴 때부터 함께 추었던 '라라의 테마' 춤을 같이 추자고 하면 "엄마, 나한테 왜 그래요!" 하며 내뺀다. 서글퍼진 나는 "내 아들 어디 갔어, 내 아기 돌려줘~." 하며 쫓아가지만 아들은 벌써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근 뒤다.


이제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은 키가 벌써 172cm를 넘어서고 있다. 콩나물 자라듯 쑥쑥 자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지만 큰 키만큼 나에게서 멀어지고 벽을 쳐버리는 아이가 속상하기도 하다. 막내라서 그런가..... 큰 아이 때와는 다르게 아이가 커가는 것이, 내게서 멀어지는 것이 내가 나이 드는 것보다 더 아쉽다.


올 것이 오고 있었다.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사춘기(期)가 시작된 것 같다. 봄을 생각하는 시기. 아이가 나타내는 징후와는 다르게 참 낭만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만물이 생명을 뿜어내는 봄처럼 꽃기운  펄펄 넘치며 내 아가가 나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한 아들의 봄 앞에서 나 또한 새로운 봄을 맞으하고 있. 갱춘기(更春期). 갱년기(期)라는 말을 대신할 수 있는, 사춘기처럼 정서와 몸이 불안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란다. 정식적으로 국어사전에 등재된 말은 아닐 것이나, 봄이라는 뜻이 들어가 있기에 나는 이 말을 쓰련다. 무엇이라도 아들과 동질감을 갖기 위해 끌어 쓴다.


오십 고지가 머지않은 나는, 다행히 아직 신체적인 변화는 뚜렷하게 없지만 아침, 점심, 저녁의 감정선이 다르다. 아침에는 해의 기운을 받아 의욕이 넘치다가도 겨우 오전 11시가 되었을 뿐이데도 물을 주지 않은 식물처럼 시들린다. 어제까지 재미있던 일들이 시시하고 허무하다. 집안 곳곳에 내 머리카락이 낙엽처럼 떨어져있고 습한 장마인데도 얼굴이 푸석거려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 쉰다.

 


숙제하러 제 방에 들어간 아들이 한 시간 째 조용하다. 수상하다. 진짜로 공부할 때는 15분마다 나와 냉장고를 열어 먹을 것을 찾는데 말이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노크도 없이 아들 방문을 확 열어재낀다. 책상 위는 아이스크림 봉지며 책들이 쓰레기장처럼 엉커 있고 방바닥은 벗어 놓은 옷들이 널브러져 있다. 역시나 녀석은 스마트폰 삼매경이다. 가라앉아 있던 기운이 위로 날카롭게 뻗친다.


"이 녀석, 네 방이 쓰레기장이야? 그리고 숙제는 안 하고 뭐 하고 있는 거야, 지금!"

"아, 엄마 자꾸 왜 그래요. 내 방이니까 나가줘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뭘 알아서 해, 알아서 안 하고 있잖아 맨날!"


왜 그래요, 나가줘요, 알아서 할게요. 요즈음 아들이 내게 자주하는 내뱉는 3종 세트의 말이다.( 중에서 '나가줘요'라는 말이 제일 서글프다)

나 또한 매번 반복되는 레퍼토리를 읊어댄다. 다시 한번 그러면 스마트폰 해지하겠다고.


거의 매일의, 그나마 잔잔한 풍경이다.


이제 아이는 나의 말을 흘린다. 들어먹히질 않는다. 아들 또한 답답한지 정색한 얼굴로 애꿎은 머리카락을 연신 쥐어뜯는다.  맑게 웃으며 춤을 추던 아이의 어릴적 모습이 겹쳐 눈이 따갑다. 눈을 몇 껌뻑거리곤 책 한 권을 펼친다.


그대는 활이며, 그대의 자녀들은 그대로부터 날아가는 화살이다.
사수는 무한의 길 위에 놓인 과녁을 보며
그의  화살이 빠르고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여 그대들을 잡아당긴다.
사수의 손에서 그대들이 구부림  당하는 것을 기뻐하라. 그는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는만큼 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한다.

-칼릴 지브란 《예언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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