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는 겉옷을 벗고 전업주부라는 일상복만 입은지도 어언 2년이 다 되어간다. 퇴사한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남편밖에 없었다. 동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초리를 보냈고 다른 가족들은 너무 아깝다고 했다.
정년까지는 아니어도 임금피크 직전까지는 다니겠노라 호언장담하며 가열차게 일해왔다. 그러나 떠나야 할 때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닌 여러 상황들이 그렇게 되도록 밀고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간 쌓았던 모든 다짐들은 거센 파도 앞 모래성 같았다.
알고 있었다. 겉옷을 벗으면 추울 것이란 걸. 다시 입고 싶어 질 거라는 걸. 그래도 과감히 벗어 버렸다. 나는 없고 옷만 걸어 다니는 것 같았기에. 허무에 덜덜 떨다 글쓰기라는 성냥불을 켜기 시작했다. 겉옷이 없어도 따뜻했다.
글을 쓰면 먼지 같은 잡념들이 가라앉는다. 퇴사 후 잃게 된 것들에 대한 미련, 사춘기 아들에 대한 온갖 걱정들, 어느 순간 본격적으로 얼굴에 그어지는 금들, 다니는 곳마다 후두둑 떨어지는 낙엽 같은 머리카락에 대한 우울한 연민에서 벗어난다. 노트북을 켜면 오롯이 나와 내가 지나온 시간, 사람, 나를 관통한 모든 것들과 마주한다. 온 에너지가 한 곳으로 모아지는 느낌, 몰입으로 충만하다.
내게는 충만한 이 시간들이 가족들에겐 어떻게 비치는지 궁금했다. 나의 분신 같은 딸에게 살며시 물었다.
'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하니 부러워요. 글 쓰는 엄마도 멋지고요.'라는 말을 기대하며. 그러나,
"음... 잉여롭네요. "
"응? 잉여? 잉여인간 할 때 그 잉여?"
"응! 잉여생산 할 때 그 잉여..."
"......."
지금은 대학 2학년인 딸아이는 고등학생이던 때 존경하는 인물란에 '엄마'를 썼었다. 가사와 회사일을 동시에 해가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엄마가 멋있다고 했다. 그러했던 딸이 지금은 나의 이 충만한 시간들을 '잉여롭다'라고 일축한다.
"잉여롭다는 게 여유롭다는 그 얘기지?"
"뭐, 그렇다고도 할 수 있죠."
"그럼 좋아 보인다는 거네."
"딱히 그런 것도 아닌데......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봐요, 언어 공부를 한다든지."
"생산적인 일? 나, 글 쓰는데?"
"에이.... 전업작가도 아니면서. 중국어 공부 다시 시작하세요, 코로나 끝나면 여행 가서 써먹을 수 있게"
"......."
그렇구나. 내가 충만하게 생각하는 글쓰기의 시간이 딸에게는 생산적이지 않은 잉여의 시간으로 여겨지는구나. 초라했다. 한 때는 딸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잉여의 시간을 지내는 사람으로 전락한 것 같아서.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는 재량도 안되고, 그렇다고 돈 벌자고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러고 앉아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는가. 왜 잉여의 시간을 짓고 있는가.
심지어, 나의 글쓰기는 아들의 PC게임과 동등한 위치에 있기도 하다.허락한 시간 안에서 하는 게임이지만 너무 몰두해 있는 아들의 뒤통수가 꼴 보기 싫어서 한마디 쏘아댔다.
"뭐가 그리 재미있니? 그만 좀 해라."
"엄마도 글쓰기 그만둬요, 그럼 저도 게임 안 할게요."
협박이다. 내가 글쓰기를 그만두지 않을 거라는 확실한 믿음을 갖고 하는 말이다. 어찌 보면 나보다도 그 믿음이 강한 것 같다. 녀석이 게임을 안 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한 사람, 남편은 나의 이 잉여로운 생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동갑이자 (구) 회사 동기이고 생활의 동지인 그는 웬만하면 내 편이다. 내가 하는 일에 딴지를 걸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남편과 대화하는 시간이 적어지자 인상을 찌푸리며 '적당히 해라'라는 말을 던졌다. 과하단다.
원래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 몰두하게 되면 그것만 하는 타입니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아이들도 생각이 안 났고 집에 와서도 일 걱정에 삐쩍 말랐었다. 지금은 전업작가도 아니면서 머릿속에 온통 글감과 문장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많은 글을 쓰고 있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크게 환영받지도 못하면서 글쓰기를 왜 하냐고 묻는다면, "그냥 쓰고 싶어서"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쓰고 싶지 않을 때까지 쓸 것이다. 딸이 잉여의 시간이라고 얕보든, 아들이 협박을 하든 개의치 않다. 나는 이 순간이 즐겁고 감사하다. 충만하다.
적지 않은 연봉과 명찰을 버리고 얻은 자유로운 시간들을 집안일에 다 쓰면서 허망했었다. 아이들에게 온통 집중하여 잔소리만 해대는 마귀할멈이 된 것 같아 우울했다.
전업주부의노동은 '헌신'이라는 포장으로 영혼 없는 위로를받고 경제적 활동 영역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내가 퇴사를 하자 딸아이가 '존경'을 철회한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어느덧 자본주의에 물들어버린 딸아이의 의식과 시선이 당황스러웠다. 하긴 나도 내가 당사자가 되어서야 비로소 전업주부라는 이름이 가진 공허의 무게를 알게 되었으니.
뻥 뚫린 시공은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를 통해 채워진다.
내게는 그 무언가가 글쓰기였다. 글을 쓰며 망할 놈의 허무가 옅어지고, '따다다다다다'의 잔소리가 '따다다' 정도로 줄었다.('따'까지만 해야 하는데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
나에게 글쓰기는 남아도는(잉여)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 아닌 인정받지 못하는 내 시간들에 대한 위로이자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시간들을 되찾는 것이다. 잉여로운 시간이 아닌, 은혜로운 시간이다. 끌려다니는 시간이 아니라 '비로소 내가 주체가 되어' 창조해 내는 시간이다. 이 믿음이 나를 버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