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사람에게는 결혼 소식을 알리지 않는 건가요

그렇게 잊혀져 간다

by 혜나무

2년 전 마지막 사업소에서 함께 일했던 우리 파트의 직원들은 모두 성실했다. 일이 많을 때는 퇴근 시간 후에도 자발적으로 남아서 마무리하고 가거나 서로 도와주며 팀워크가 좋았다. 파트장이었던 나는 그들이 예뻤고 고마웠다. 직원들의 야식비를 위한 법인카드가 따로 있었지만 나는 내 개인카드도 많이 썼다. 아깝지 않았다.


파트 직원 중 결혼을 하지 않은 직원이 3명 있었다.

L은 5년 동안 사귄 여자 친구가 있지만 결혼을 할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만약 한다면 3,4년 후에나 하게 될 것 같고 자식은 낳지 않을 거라고 했다. 열심히 돈을 모은 후 회사 때려치우고 여행 다니며 살 거라고.


S는 학교 선생님과 사귀고 있는 중이었는데 여자 친구가 결혼에 대한 회의주의자라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였다.

"차장님, 이번에는 진짜 헤어졌어요."

"그러다가 또 만날 거잖아. 못 믿겠다 진짜. 크크."


H는 남자 친구가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다. 나는 걱정이 되었다. 그녀는 나이도 어리고 말이 없는 것이 내 딸 같아서 항상 눈에 밟혔다. 남자들이 대부분인 기술직의 세계에서 강하게 키우고 싶어서 현장을 담당하게 했다. 무엇보다 나는 그녀에게 유리천장을 뚫는 멋진 선배이고 싶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들의 결혼을 기다리지 못하고, 유리천장은 쳐다보기만 한 채 그곳을 떠나왔다. 갑작스러운 나의 퇴사 소식에 당황의 빛들이 스쳤다.

내 자리는 곧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고 그들은 새로운 사람에게 적응하면 그만일 거라고 미안한 마음을 애써 잊었다.

각자의 속마음은 감춘 채 우리는 서로 웃으며 헤어졌다.

H는 예쁜 부부 찻잔 세트와 함께 편지를 수줍게 건네주었다. '존경하는 차장님, 그동안 잘 챙겨주시고 열심히 가르쳐 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다 내려놓으시고 가족분들과 행복한 나날 보내세요. 다시 좋은 모습으로 뵐 때까지....' 코끝이 시큰했다.


"나는 가더라도 자기들 결혼하면 꼭 소식 줘야 한다. 안 그럼 나 삐질 거야."

"그럼요 당연하죠. 좀 멀더라도 꼭 오셔야 합니다!"

"차장님, 강릉에 놀러 오시게 되면 연락만 주세요. 영빈관 준비해 놓을 게요."




퇴사한 선배들이 숙소 같은 것을 부탁해오면 번거로웠던 기억이 있어 강릉에 놀러 가게 되어도 그들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단지 차로 회사 인근을 돌며 뭐 변한 게 없나 한 번 휘익하고 지나치기만 했다.


6개월 전 카카오톡에서 L의 프로필 사진을 봤다. 결혼을 늦게 할 거라고 그러더니 생각보다 빨리 했다. 코로나로 신혼여행은 제대로 갔을까. 말한 대로 신부는 예뻤다.


퇴사하기 한 달 전 L이 업무의 애로 사항을 나에게는 말을 하지 않고 노조 위원장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그 내용을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를 통해 들어야 했다. 실망이 컸고 속상했다. 나는 벽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아니면 퇴사할 사람에게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좋지 않은 감정이 마음 한 구석에 고인 채 떠나왔다. 내게 결혼 소식을 알려 오지 않아 그럴 만도 하겠지 생각하면서도 서운함에 씁쓸했다.


한 달 전, 카카오톡을 훑어보니 S도 결혼을 했다. 신부는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던 학교 선생님이었다. 알고 보니 신부는 나와 같은 대학 동문이었다. 여자 친구가 내 동문이니 축의금을 두배로 주겠다고, 결혼하게 되면 꼭 알리라고 했는데, 그 역시도 내게 소식을 주지 않았다. 특히 S는 같이 일한 지 가장 오래되었고 고생을 많이 해서 정이 많이 든 친구였다. 그래서 L의 프로필을 봤을 때 보다 더욱 허탈하고 서운함이 깊었다.


오늘, H의 대문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아직 그때의 남자 친구가 배경 사진에 걸려있다. 다행이다. 멀리 떨어져 있었어도 무사히 잘 사귀고 있구나. 그러면서 H만은 결혼할 때 내게 연락을 해주겠지 하는 기대가 부끄럽게 솟는다. 미련하게도....



나를 포함해서 모두 사택 생활을 했기에 퇴근 후 저녁이면 맛집을 탐방하고 웃고 떠들며 하루의 노곤한 때를 씻곤 했다.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 오더를 내리는 팀장을 안주 삼아 낮의 억울함을 시원하게 풀어댔다.

그들은 부족한 나를 믿고 따라와 주었고 나는 그들이 일에 치여 지치지 않도록 방어와 공격을 대신해 주었다.

우리는 하나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다 지나간 일이 되었다. 그들에게 나는 잊혀진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들과 나누었던 카톡 속의 대화들은 지워지지 않은 채 아직 그대로인데...... (지우지 못하겠다)


하긴, 먼저 그들을 실망시킨 사람은 나였지.....

많은 다짐과 약속들을 그들에게 했었다.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면서 우리 힘내서 잘해보자고.


"이 과제 끝나면 자기가 원하는 보직에 가도록 내가 팀장님께 말해볼게."

"힘들지만 우리 잘 버텨보자. 어이 K. 당신 땜에 내가 산다."

"일단 공사 설계부터 하자. 예산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확보해 볼게."

"미국에서 남자 친구 오면 맛있는 거 사줄게. 꼭 보여줘야 해."

"우리 이 고생 끝나면 모두 좀 널널한 파트로 옮겨보자."


그러나 내가 회사를 떠나면서 모두 공허한 말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나의 약속들과 다짐들을 잊어주길 바랬다.

떠난 사람만 그리움 타령이지 남은 사람들은 치열한 일상을 그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에 퇴사 후 한 번도 그들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결혼을 하게 되면 꼭 알리겠다'는 그들이 문자조차 주지 않았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SNS의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서운한 마음들이 시리게 쌓여갔다.


한 때는 가족 보다도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던 사람들. 주고받았던 말들과 웃음들이 흩어졌다. 어디로 갔을까.

이제 그들 속에서 나라는 사람은 어쩌다 발견되거나 찾게 된 서류들 속에 이름의 흔적만이 떠다닐 것이다.

'그때 그 차장님, 선배님 정말 좋은 분이었는데'라고 회자되기를 바라면서도 내가 끝까지 같이 하지 못한, 지키지 못한 다짐들에 부끄러워진다.

잊혀졌으면 하는 마음이 무겁게 떠다니다 가라앉는다.


그렇게 잊혀져 가겠지...


이상하지 않은가 삶이란 것은
자꾸만 눈에 밟히는
패랭이꽃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남길 바라지만
한편으론 잊혀지지 않는 게 두려워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패랭이꽃

- 류시화의 시 <패랭이꽃> 부분


패랭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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