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송 중인 웹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의 한 장면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대학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온 29살의 세 여자 친구들이 바닷가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10년 후를 걱정하면서 푸념을 한다. "10년 후에도 여기서 이렇고 있진 않겠지?"라는 이런 류의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외쳤다. "이것들아! 10년 후에도 여전히 젊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中 https://youtu.be/PnJ__iAUj0E
예전에 드라마나 영화 속에 자주 등장했던 클리세 중 이런 내용들이 있었다. "나는 OO살까지만 살 거야. 구질구질하게 나이 들고 싶지 않아." 뭐 이런 류의 대사를 하는 장면?
그 장면을 보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대사를 하는 철없는 등장인물을 한심해하면서 욕하곤 했다. 그리고, '어릴 땐 그런 생각을 한 번쯤 할 수도 있지'라면서 웃어넘기는 사람도 드물게 있었다. 또 아주 극소수는 그 대사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어느 부류였냐면 음.. 안타까워하는 사람이었다.
나이 듦은 절대 구질구질해지는 과정이 아니다. 단지 선택의 기회가 줄어들고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줄어들 뿐이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결코 아니다! 나이 듦은 이뤄나가는 과정이다.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가지고 있는 것들로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오늘의 내가 나의 무언가를 써서 내일을 만들었기 때문에,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가진 어떤 것들을(기회.. 에너지.. 시간..)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나의 기회, 에너지, 시간을 쏟아가며 내 인생을 좀 더 낫게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나이 듦의 과정이 아닐까.
하지만 어린 친구들에게 나이 듦은 어쩌면 공포 인지도 모르겠다. 나이와 관계없이 아직 닿지 못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몇 살을 기준으로 죽어버려야지라는 드라마 속 대사를 안타깝게 여겼던 나 조차도, 대학을 졸업하고 방황을 하던 그 시절에 울면서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새로 시작하기엔 나는 나이가 너무 많아."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잠자다 이불 킥 할 정도로 얼굴이 붉어지긴 하지만, 그때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유독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듦을 걱정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안 그래 불투명한 나의 미래가 걱정되는데, 거기에 나이 듦을 죄악(?)시 하는 사회 분위기도 한 몫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나라를 관통하는 여러 핫 키워드 중에서 단골 소재들이 있다. '부자 되세요.' , '건강하게 살아요.' 그리고, '젊게 삽시다.' 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사람들은 '부자'를 외쳤다. '부자'를 외치다 그것이 다가 아닌 것을 깨닫자, 이번에는 '웰빙'을 슬로건으로 삼았다. 그다음에는 영원한 젊음을 갈구했다.
허풍을 한 스푼 더하고 쓴소리 두 스푼 더해서, 대한민국은 안티에이징 최면에 걸린 나라 같다. 여기저기서 안티에이징을 선전하고 젊음을 미화한다. 마치 젊음은 '백'이고 나이 듦은 '흑'인 것처럼. 배우 박해일이 연기한 영화 '은교' 속 머리가 희끗한 노시인 이적요가 이런 말을 한다. "너희의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 中 시인 이적요(배우 박해일 연기)
원래 기억이라는 것은 미화되는 법이다. 그래서 지나간 시절은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여겨지고더 좋았던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렇게 가진 것은 없지만 에너지가 넘쳤던 젊은 그 시절에 대한 기억도 미화되어 추억이 된다.
2011 제9회 올해의 책 선정 도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어쩌면 그래서 김난도 교수가 쓴 '아프니깐 청춘이다'가 당대의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많은 청춘들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책이지만, 이 책이 나왔을 당시엔 나름 많은 청춘들의 공감을 얻었었다. 반골기질이 있던 나는 이 책이 출간됐을 당시, 무슨 헛소린가 하고 그 책을 읽지 않았지만 내 주위에 이 책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에 돌이켜 생각해보면, 청춘이란.. 젊은이란.. 늘 빛나고 아름답다는 사람들의 암묵적 생각과 이미지를 깨트려 주고 환기시켜주는 그 참신함을(그 당시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
청춘이 가진 무수한 기회들은 아직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음을 뜻하고, 넘치는 에너지는 무한하지 않다. 그렇기에 청춘은 아름답지만 아프다. 젊다고 무조건행복하고 완벽한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은 분명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지만, 그렇다고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 시절보다 못할 것은 없다. 지금 내가 만들어 가는 시간 또한 소중한 순간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보내고 있는 이 시간 또한 후일의 나에겐 젊은 시간이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내일의 나'에게 '오늘의 나'는 언제나 젊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가 중에 권교정이라는 분이 있다. (TMI: 그분의 '어색하지만 괜찮아' 단행본이 내방 책장 서랍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있다.) 권교정 작가의 단편집 중에서 '붕우'라는 책이 있는데, 그 안에 따로 실린 '피터팬'이라는 단편에서 이런 내용이 나온다.
권교정 단편집 '붕우' 표지
피터, 넌 자라야 해. 어른이 되어야 해.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거야. 이 세상에는 아이인 채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수많은 감동이 있는 거라고.
왜 우리 사회는 나이 듦의 여러 이점은 말해주지 않는 걸까? 왜 나이들만 하다고 이야기해주지 않는 것인가. 나이가 들면 젊은 시절엔 절대 가질 수 없는 경험을 바탕으로 얻어지는 연륜이 생긴다. 자신이 겪었던 경험들 만이 진리라고 여기는 '일반화의 오류'만 조심한다면, 나이가 들면 그 전보다 더 합리적으로, 더 유연하게, 더 신속하게, 어떤 사안에 대해서 결정하고 대처해 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물론 어제의 내가 젊음을 불태우며 시행착오를 겪으며 열심히 살았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가끔, 글 서두에 언급했던 드라마 '술꾼 도시 여자들'의 여주인공들처럼 자신의 내일을... 10년 후를 걱정하는 후배들을 만나곤 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 "네가 보기에 내가 많이 늙어 보여?" 그러면 그 후배들은 거의 백이면 백,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러면 내가 또 이런 질문을 한다. "네가 보기에 나에게 주어진 기회가 없어 보여?" 그러면 그 후배는 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그때 나는 웃으면서 그 후배에게 이렇게 말해 준다.
"너의 10년 후가 나 정도 될 텐데, 너에겐 그 10년의 기회와 가능성이 있는 거야. 그리고, 그 10년을 보낸 후에도 지금의 나처럼 또 다른 기회와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테고. 네가 보기에 내가 그리 나쁘지 않다면, 너의 미래를 너무 근심 걱정하지 않았으면 해. 나는 방황을 많이 한 사람이라서 니 나이에 너보다 더 못했어. 그러니 너의 미래는 아마도 지금의 나 보다 더 멋지지 않겠니?"
다사다난했던 나의 20대 시절에 우연히 30대 문화기획자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 내가 차가 없어 그분이 나를 태워주셔서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분과 나눴던 여러 말 중에 지금까지 기억나는 말이 있다. '자신은 지금이 가장 좋다고. 자신은 나이들 수록 오히려 더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많고, 마음이 단단해져서 좋다고. 자기는 20대도 나쁘지 않았지만 30대가 더 좋은 것 같다고. 다가오는 30대를 두려워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맞이하라고.'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中
나이 듦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그저 늙어가는 것과 성장하는 것. 어떤 길을 택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사람들은 죽을 걸 알면서도 살잖아." 그렇다. 크게 봤을 때 '살아가는 것'과 '죽어가는 것'은 같은 말이다. 같은 현상의 다른 말이다. 반쯤 채워진 물 잔을 보고, 누군가는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물이 반 밖에 없네?"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 이제 선택하자.우리 이제 늙지 말고 성장하자.그리고 '오늘의 나'에게 주어진, '내일의 나'가 부러워할 남은 생에가장 젊은 지금의 빛나는 이 순간을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