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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Dec 12. 2021

슬럼프를 이겨내는 39가지 방법_6

6. 악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한 때는 내가 운이 좋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뽑기(?) 운이 좋은 편 이기도 했고, 지금도 어디든 응모하면 자주 당첨되는 편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정도의 운까지만 주어졌지, 복권운이라던지 하는 큰 횡재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느꼈던 가장 큰 운이라면.. 날씨 운 정도? 친구들 끼리 우스갯소리로 나에게 놀신(?-노는 것을 도와주는 신)이 함께한다고 말할 정도로, 내가 어디 여행을 거나 놀러 나갈 때가 되면 날씨가 좋았다. 태풍이 불다가도 내가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면 잠잠해질 정도였으니깐. 딱 한 번 여행을 가던 당일, 날씨가 좋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내 몸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여행을 갈 여력이 없는데 무리해서 출발했던 여행길이었다. 덕분에 나는 무리하지 않고 숙소에서 편히 지낼 수 있었다.


어쨌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은 나는 날씨운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운이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위에는 나에게 운이 좋다고 말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그런데, 그게 정말 '운' 일까? 


'카카오페이지'라는 모바일 컨텐츠 플랫폼에 연재 중인 만화가 있다. 윤지운 작가의 '네 곁에도 어쩌면'이라는 작품인데, 23화쯤에 '도깨비집'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자세한 내용을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간단한 핵심 줄거리만 말하겠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도깨비집이 있는데, 도깨비(혹은 귀신)가 아무리 괴롭혀도 끝까지 그 집에서 이사를 나가지 않고 살아내면 어떻게든 끝내는 잘 살게 해주는 그런 내용이었다.


타고난 천재적인 재능도, 넘치는 행운도, 나 자신과 타협하는 융통성도 가지고 있지 못했던 내가 나에게 닥친 여러 악운을 이겨내는 방법은 그저 견디는 것이었다. 그리고 견디고 견디다 보니, 악운을 피해 가는 눈이랄까. 요령이랄까. 그런 게 생겼다.


예를 들자면, 이런 일이 있었다. 예전에 아시안게임 덕분에 장기 간 방송 편성이 없었던 때가 있다. 그때 나는 내 기준에서 나름 큰 용단을 내렸다. 혼자서 파리 여행 가기! 그런데, 너무 비쌌다. 원래 해외여행이라는 것이 얼리버드로 빨리 예약하면 할수록 비행기표 가격도 좋고, 노선도 좀 더 편한 노선을 잡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지구 반대편 파리를 가는 비행기 표를 출발일을 거의 일주일 남겨놓고 구매하려니.. 정말로 비쌌다. 그래서 결국 직항은 포기하고 경유를 선택했는데, 그 당시에 가장 가격이 저렴했던 것이 러시아를 경유하는 표였다.


나는 그때까지 살면서 혼자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원래 뭐든지 '처음'은 어렵고, 여러 걱정이 따르는 법이다. 그리고 나는 보기보다 굉장히 소심하다. 그래서 여러 변수를 대비했다. 파리에 소매치기가 많다고 해서 여행 경비를 한 곳에 보관하지 않고 여러 곳에 나누어 옷소매 끝에 살짝 바느질을 해서 숨겨두었다.  그리고, 러시아 경유 비행기는 수하물이 종종 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짐을 2개로 나누어 하나는 수하물 칸에 싣고, 또 다른 하나는 배낭에 넣어서 비행기 안에 들고 탔다. 배낭 안에는 여행에 꼭 필요한 최소 물품들을 챙겼다. (참고로, 비행기 안에 타고 들어갈 수 있는 가방은 규격 제한 규정이 있다.) 그 밖에 여러 가지 등등등... 


그런데, 파리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악운이 나와 함께 했다. 비행기가 연착연착연착을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햇빛이 환하게 비추는 대 낮에 도착했어야 할 프랑스 이건만, 물 설고 말 설은 타국에 깜깜한 한 밤중에 도착한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정말로 수화물 칸에 실은 내 짐이 도착하지 않았다. (그 수화물은 결국 내가 귀국하고도 한 달 뒤에 택배로 돌려받았다.)


나름 대비를 했으나,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대비를 한 덕분에 파리 여행 기간 동안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그때 느꼈다. 악운도 대비하면 어느 정도 피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내리는 비를 막을 수는 없지만, 우산을 써서 피할 순 있다고. 


그리고 그렇게 악운을 이겨내니, 나름 보상도 따랐다. 나는 파리 여행 후 내가 이용한 항공사에 내가 입은 피해에 대해 보상을 요구했고 얼마간의 돈을 돌려받았다. 안 그래도 비싼 여행경비로 휘청거리던 차에 받은 보상금은 나에게 꽤 많은 도움이 되었다. 허풍을 한 스푼 보태서, 정신 승리하자면... 악운을 행운으로 바꾼 것이다. 독.하.게. ^^(보상금을 받는 과정은 꽤나 지난했다.)


나에게 정말 어려운 프로젝트가 주어졌을 때 그저 한숨짓고 포기한다면 그저 악운으로 끝나는 일이겠지만, 그 프로젝트를 잘 완수해 낸다면 악운으로 느껴졌던 그 프로젝트가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내가 PD로 입문하고 한 일 년쯤 지났을 때 일까? 회사의 막내 PD 위치였던 나는 선배들이 하는 프로젝트 여기저기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사실 이제 와서 기회라고 말하는 것이지, 당시엔 그런 상황이 너무 싫고 원망스럽게 여겨졌다. 너무 힘들어서 나도 사람이다 보니 이런 생각들도 했었다. '남들보다 일을 많이 한다고 월급을 더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이렇게 일을 돕는다고 해도 선배들 프로젝트라서 내가 일하는 티도 안 나고.'


원래도 일복이 많은 편이었는데, 그 시절엔 정말 일이 많았다. 그래서 선배들한테  아닌 반항도 하고, 도망갈까도 여러 번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제일 잘하는 버티기 신공으로 그 시절을 이겨냈고, 그 결과는 여러 '상'으로 돌아왔다. 한 10초 정도긴 하지만 내가 선배 PD와 수상하는 장면이 공중파 TV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몇 년 전 주간지 기자로서 한 시간 토론 프로그램을 출연하고 통편집당해서 10초 방송 나갔던 때와 비교하면 출세한 것이다. 굴욕의 10초가 영광의 10초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말미긴 하지만 상패에 내 이름도 올리고, 그 덕분으로 다음 해 연봉도 조금 오르고 금일봉도 받았다.(내 양에는 차지는 않지만;; ㅎㅎ)  


그래서 악운을 마주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어느 날 갑자기 뜻하지 않게 악운이 나를 덮쳐서, 너무 화가 나고 너무 어이없고 또 그래서 슬프기까지 하다면.. 잠시만 숨을 고르고 나를 덮친 그 악운의 다른 단면을 봤으면 한다. 악운은 언제나 새로운 '기회'를 동반하고 찾아온다. 어두운 아우라에 눈이 멀어 악운이 감춰둔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그건 악운을 피할 수 없을 때 이야기다. 악운은 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최대한 피해 가는 것이 좋다. 누구인지 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예전에  어떤 유명인이 자신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최대한 피해 가지 맞서 싸우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나도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렇게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하고도 그 악운이 나를 덮친다면, 그때는 그 악운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피 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정말 다행인 것은 악운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악운은 행운보다 더 변덕스러워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나에게 악운이 닥쳤을 때 그 시기를 슬기롭게 잘 보내지 못했을 경우, 나에게 행운의 시기가 찾아온다고 해도 그 행운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놓치기 쉽다. 악운의 시기는 준비의 시기이기도 하다. 곧 나에게 찾아올 행운을 알아보는 눈을 키우고, 그 행운을 담을 자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기.


그리고, 악운이 나와 함께하는 그 시기에는 내 마음속에 행복 자가동력기를 풀(Full) 가동해야 한다. 그 시기에는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이라고 하더라도 좋은 말을 해주기 쉽지 않고, 도움 되는 말을 해주더라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본인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고 챙겨야 한다. 이런 말이 있다. '성공한 사람은 열 번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지만, 실패한 사람은 넘어진 열 번을 모두 후회한다.' 열 번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려면, 강철 멘탈과 긍정적인 사고가 꼭 필요하다. 그래서 힘든 순간일수록 자기 자신을 잘 위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자기 연민에 빠지라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그 자기 위로를 잘 못했다. 행복 자가동력기를 잘 돌리지 못했다. 내 마음을 잘 돌보지 못하니 몸이 자꾸 아팠고, 몸이 자주 아프니 마음에도 기운이 돌지 못했다. 그래서, 정말로 좋은 순간이 나를 찾아왔을 때 활짝 웃지 못했고, 그게 좋은 순간인지도 온전히 느끼지 못했다. 그저 지난 후에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아.. 그때가 좋은 순간이었구나.'라고 말이다.


여러분은 나보다 더 악운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 이야기를 들은 그대들이니깐.. 나 보다는 낫겠지.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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