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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Nov 12. 2020

[서평]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심시선 할머니로부터 뻗어 나온 가지들, 자손들이 하와이에서 할머니의 제사를 지낸다는 이야기이다. 제목의 ‘시선’이 누군가의 이름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심시선’이라는 인물이 소설에 미치는 파급력을 생각해 보았을 때는 충분히 제목이 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사진 신부로 하와이에 가 마티어스를 만나게 되고, 고난 끝에 예술가가 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되는데, 얼마 전 읽을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또, 심시선 할머니가 남긴 글들이 소설 곳곳에 삽입되어 있는데, 그 자체만으로 참 잘 쓰여진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 반복해서 읽기도 했다.

할머니가 좋아했을 만한 물건들을 가족들이 하와이 현지에서 하나씩 찾아 오는 것이 주요 미션인데, 인생을 마감한 후 누군가가 나를 그러한 방식으로 기려 준다는 사실이 참신했고 한편으로 부러웠다. 할머니의 단추 상자를 보며 펑펑 우는 손녀의 모습, 커피를 좋아하던 할머니를 떠올리고, 그녀가 남긴 글의 흔적들에서 지나온 시간들을 거슬러 올라가는 가족들의 모습까지. 당시 기준으로 자유분방했던 심시선의 삶이었기에 가족관계가 단순히 다소 복잡하고 비혈연관계를 통해 맺어지기도 하였지만,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서로를 다독이는 모습은 진정 가족이었다. 작가는 아마 새로운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나는 단단히 마음먹고선, 어찌 살아남았나 싶을 정도로 공격성이 없는 사람들로 주변을 채웠다. 첫 번째 남편도 두 번째 남편도 친구들도 함께 일했던 사람들도 야생에서라면 도태되었을 무른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을 사랑했다. 그 무름을. 순정함을. 슬픔을. 유약함을. (125p)


시선은 사랑과 자신의 언어 중에서 언어를 선택한 사람이었다. 터져 나오는 말들을 거꾸로 잠글 수는 없던 사람..(p181)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331p)




[엮어 읽을 책] 이금이, 알로하 나의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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