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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Nov 26. 2020

[서평] 박경리, 시장과 전장

전쟁, 인간이 만들어 낸 비극. 


 6.25전쟁을 배경으로 당시 사람들이 겪었던 역경과 혼란, 극복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커뮤니즘(공산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이념을 잣대로 한 민족이 나뉘게 되고,  전쟁을 경험하면서 평범했던 사람들의 삶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아프게 다가왔다. 전후문학은 읽을 때마다 그러하다. 대의나 가치 아래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시신이 되어 거리에 나뒹굴고, 어떠한 범죄도 지극히 사소해지는 혼란의 시기. 이런 것들이 인간이 ‘굳이’ 행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렇게 놀랍고 두려운 일들이 실제로 이루어졌고,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일어나고 있다.

  가족을 떠나 3.8선 근처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지영’은 전쟁이 발발하자 서울로 간신히 몸을 피했고, 근근이 살아가지만 어머니 ‘윤씨’는 식량을 구하러 가선 길에 총에 맞아 목숨을 잃는다. 남편 기석은 피란가면서 외상값을 갚을 정도로 신의있는 사람이지만 공산당에 입당원서를 냈다는 이유로 투옥되고, 그 이후로 지영은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나지 못한다.

  기석의 형 ‘하기훈’은 골수 커뮤니스트이다. 불리해지는 정세로 지리산까지 흘러들어오게 되고, 전쟁 중 ‘이가화’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전쟁 중에서도 사랑을 비롯한 인간의 삶은 지속된다. 


  전장과 시장이 서로 등을 맞대고 그 사이를 사람들은 움직이고 흘러간다. 사람도 상품도 소모의 한길을 내달리며, 그리고 마음들은 그와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1부 18장. 김 여사 중)
  아무튼 어느 쪽이 이기든 지든 간에 자식 놈은 하나 잃게 돼 있으니 기찰 노릇이지.  (2부 2장. 늙은 농부 중)

 

 기훈과 가화의 마지막 대화에는 훗날 농부과 아낙이 되어 사는 날을 꿈꾸는 장면이 나온다.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꿈과는 정반대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운명이 슬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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