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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Jul 21. 2021

문학이라는 인생 선물 종합 상자

정재찬, 시를 잊은 그대에게 

문학을 가까이 두자. 때로는 그곳에 열쇠가 있을 수 있으니.

정재찬 교수의 시 강의 내용을 담아 펴낸 책. 학창시절 배워서 친숙했던 시를 구석구석 살펴볼 때 의미가 새롭게 되살아나고 깊은 감동으로 다가올 때, 문학과는 심리적 거리가 먼 공대생조차 마음에 깊은 울림이 생겼을 것이리라. 시는 한번 읽고, 두번 읽을 때 의미가 다르게 읽히고 느낌과 감상 또한 달라지는 매력적인 장르이기에 이러한 새로운 마주침도 가능하겠지. 또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

책을 읽으며 만나는 문학작품과 새로운 관점에 무릎을 치기도 하고, 참고서에 있는 일반적인 해석대로 시를 가르치던 스스로에 대해 반성도 하게 되었다. 특히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시 속에서 화자의 좌절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인간애’라는 주제에 준해 작품을 단정짓고 넘어가지 않았던가. 교수님의 해석대로 이 시는 오히려 화자의 울부짖음이며, 현실에 대한 분노와 좌절을 읽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수영 시인의 ‘눈’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오히려 논리적이었다. 시인은 눈의 ‘깨끗함’이라는 속성보다는 ‘살아 있다’는 속성에 주목했으며, ‘순수’에 주목하는 것은 오히려 시에 대한 고정관념이라는 것. 하늘에서부터 떨어진 눈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으’며, 기침이나 가래를 뱉는 것은 히피와 같은 용기와 저항행위라는 말이다. 이때 기침과 가래는 책의 구절을 그대로 옮기면 ‘병적인 것의 표상이기는커녕, 그 자체로 순수하고 살아 있음의 증거’이다.

그밖에 김춘수 시인의 <강우>, <바람>, <꽃>을 아내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시인의 전기와 결부지어 풀어낸 것, 유치환 시인의 <그리움1> <바위> <그리움2>를 이영도 시인과의 러브스토리와 맞닿아 이야기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작품만 보아도 훌륭한 시들이지만, 시와 작품은 아무래도 별개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에, 배경을 바탕으로 접근했을 때 이해가 되지 않는 구절들도 쉽게 풀리는 경우가 있다. 현재의 윤리적 잣대로 보았을 때 심각한 불륜이고 비난의 대상이었을텐데, 우둔할 정도로 여인에게 편지를 써 대고 그대로 직진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연민의 감정도 생겨났다. 그는 내가 그동안 알던 의지의 생명파 시인이 맞았던가. 시인은 인간이고, 인간의 감정을 언어로 그려낼 뿐이다.

이밖에 천상병 시인의 <귀천>, 신경림의 <아버지의 그늘> 등 삶과 죽음, 부모 등 나에게도 해당되는 인생을 다루는 부분들을 읽을 때, 김유정 시인의 편지를 읽을 때, 죽음을 가까이 한 최인호 작가의 글을 읽을 때에는 마음이 아려왔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고 죽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누구나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때로는 우리를 슬프게 하고 웃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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