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린이를 기다려 주면, 어린이들은 나중에 다른 어른이 될 것이다.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해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일곱 살, 세 살 어린이에 둘러싸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터라 와 닿는 부분이 많았다. 아이들의 시선과 순수한 말에 웃는 하루의 어떤 장면도 그렇고, 때로는 아이의 말로부터 배움을 얻게 되는 순간도 그렇고 말이다. 책을 읽을수록 작가는 참 따뜻한 사람이라는 게 전달되어 왔다. 어린이라는 하나의 분명한 작은 인간에 대한 존중, 당연하고 중요한 태도를 작가는 가지고 있었다.
책에 ‘지금 어린이를 기다려 주면, 어린이들은 나중에 다른 어른이 될 것이다.’(p.20)는 구절이 나온다. 어린이들은 느리다고 말하며. 우리 집 일곱 살 어린이도 느린 데는 일등이어서 유치원에 도착해서 신발 벗는 것도 느리고, 밥도 책을 옆에 쌓아놓고 한참 입에 우물거리면서 느릿느릿 먹는다. 유치원에 늦는다며 며칠 전에는 밥 먹는 어린이 옆에 서서 얼른 먹으라며 재촉하기까지 했는데, 책을 읽은 후 행동을 돌아보니 참으로 후회스럽다. 작가는 누군가로부터 들은 ‘천천히 해’라는 말이 참 듣기 좋았다고 하는데, 배려와 기다림의 말과 거리가 먼 말을 들은 아이의 마음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는 자명한 것 같다. 조금 더 기다려주고, 이해해주자는 생각과 미안함이 가득해지는 부분이었다.
노키즈존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여서가 아니라, 어린이는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고 당연히 ‘있는’ 존재로 여겨져야 한다. 그 공간의 문화나 예절을 조금씩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그리고 정인이 사건을 떠올리는 부분도 있었다. 아동 학대로 죽은 다섯 살 어린이를 생각하며 우는 작가의 모습을 보며, 같은 사건이 반복되는 현실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다섯 살 어린이에게는 삶이나 죽음을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그 어린이는 다른 사람의 의지로 인해 죽었다’. 아동학대의 피해자들은 어른들의 이기심과 그릇된 선택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얻는다.
참 예쁜 말 ‘어린이’. 어린 사람. 이 어린 사람들을 어른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고 있을까. 조금 더 어린이들을 존중하고, 한 존재로 ‘인정’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좋겠다. 조금 더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자는 이 예쁜 말들이 어린이들의 세계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린이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린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 (219)
선생님들에게 배운 것, 좋은 느낌, 행복한 감정은 모두 남아서 나 자신의 일부가 되었다.(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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