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성실한 소설가를 보았나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하루키라는 소설가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책이다.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는지, 소설을 쓸 때의 태도와 마음 가짐은 어떠한지, 소설 속 인물은 어떻게 탄생하는지, 독자들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가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다.
가게를 운영하며 밤에 식탁 앞에 앉아 글을 써 내려갔을 젊은 소설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소설을 써야 할 것만 같아서, 글 쓰는 것이 좋아서 쓰기 시작한 글들이 어느 날 빛을 보게 되고, '입장권'을 따낸 그는 그후로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글을 써 왔다. 그의 작품을 여럿 읽어 보았다.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에서 시작된 끌림은 <1Q84>, <기사단장 죽이기>, <일인칭 단수>로 이어졌고, 늘 매혹적이었다. 약간 몽롱하게 그의 소설 속 세계로 들어가서 어느 새 흠뻑 빠져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루키 작품을 읽을 때는 늘 그의 음악에 대한 식견에 감탄하곤 한다. 소설 속 인물 혹은 내용과 어울리는 재즈, 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들이 등장하는데, 때로는 소설을 펴 놓고 그 음악을 찾아서 들은 적도 있다. 그가 음악을 좋아해서 재즈바를 열었던 것, 학교 공부는 '어느 정도' 하는 수준으로 두더라도 '책', '영화', '음악'에는 푹 빠져 있던 것이 그의 작품을 보다 풍부하게 하는 기반이 된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은 작가 하루키의 '건강하고 성실한 삶'이다. '작가'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불규칙한 삶, 술, 담배....막연한 이미지들과 그는 거리가 멀다. 30년간 꾸준히 작품을 낼 수 있기 위해서는 신체의 힘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는 꾸준히 '달리기'를 해 왔다. 달리기로 기초 체력을 쌓고 매일 꾸준히 일정 분량의 글을 써서 결국엔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일단은 만전을 기하며 살아갈 것. '만전을 기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다시 말해 영혼을 담는 '틀'인 육체를 어느 정도 확립하고 그것을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 이라는 게 나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경우) 지겨울 만큼 질질 끄는 장기전입니다. 게으름피우지 않고 육체를 잘 유지해나가는 노력 없이, 의지만을 혹은 영혼만을 전향적으로 강고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중략)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은 말하자면 자동차의 양쪽 두 개의 바퀴입니다. 그것이 번갈아 균형을 잡으며 제 기능을 다할 떄, 가장 올바르방향성과 가장 효과적인 힘이 생겨납니다. (198p)
소설을 쓰기 전 책상을 깨끗이 치우고 소설만을 쓸 것을 다짐하는 그, 정신과 육체의 조화로움 속에서 습관처럼 글을 쓰는 이 소설가가 나에게는 무척 매력적이고 다가온다.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그의 소설을 읽는다. 어떤 이는 소설에 대해 날을 세워 비판할 것이고, 어떤 이는 그의 소설에서 위안을 받고 감동할 것이다. 하지만 난 하루키의 이 에세이를 본 이상, 그가 작품을 써 내려 가고 여러 번 다시 쓰기를 반복하는 정밀한 열정을 본 이상, 그의 소설에 날을 세우지는 못할 것 같다. 오히려 그의 소설을 여전히 기다리는 한 명의 충실한 독자가 될 것 같고, 읽을 때마다 하루를 성실하게 맞이하는 한 명의 소설가를 떠올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