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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Jul 08. 2024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펄롱은 석탁 자재상을 운영하며 평범하게 살아간다. 혹독한 현실 속에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며 비슷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아간다. 아내 에일린, 그리고 다섯 딸과 함께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준비하고 선물을 고민하는, 그야말로 평범한 일상이다. 그런 일상 속에서 약간의 무기력함과 지루함을 느끼기도 한다.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이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44p)



어느 날 펄롱은 수녀원 근처에 갔다가 신발도 신지 않고 엎드린 채 바닥을 문지르는 아이들을 본다. 그 아이들은 자신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달라고 하지만 펄롱은 자리를 뜬다. 집으로 돌아온 펄롱은 아내 아이린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만, 아이린에게 있어 그 아이들이 처한 상황은 중요하지 않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아일린이 다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펄롱은 사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며, 열여섯에 자신을 낳은 엄마와 함께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자랐다. 미시즈 윌슨의 배려 덕분에 펄롱은 고생하지 않고 안정된 환경 속에서 자랄 수 있었다. 펄롱의 마음 속엔 미시즈 윌슨과 같이 타인의 고통을 보고 눈 감지 않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이 있었을 것 같다.


 수녀원을 다시 찾은 펄롱은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를 빼앗기고 석탄 광에 감금된 아이를 만난다. 그리고 그녀를 데리고 수녀원 안으로 들어가 수녀원장과 대화를 나누는데,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짐작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펄롱에게는 다시 평범한 하루가 이어진다. 가족들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미사에 갈 준비를 한다. 하지만 펄롱의 마음은 무겁다.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 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 - 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 -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다.” (99p)








 크리스마스 이브. 펄롱은 다시 그곳으로 향한다. 아이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나랑 같이 집으로 가자, 세라.”(116p)


  수녀원들에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펄롱의 딸들에게 불이익이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계속 걸어간다. 그리고 원래 늘 다니던 길로 아이를 데리고 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회피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는 것을 느낀다.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까? 펄롱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그걸 뭐라고 부르든 - 거기 무슨 이름이 있나? - 밖으로 마구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 속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 (120p)

펄롱이 석탄 광에 여전히 있는 소녀를 꺼내주는 그 마음을 헤어려 본다. 그가 수녀원 담장에 박혀 있는 날카로운 유리를 보고 자물쇠가 채워지는 소리를 들은 그 순간의 마음, 일종의 죄책감이었을 것이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의 가장 좋은 부분을 세상에 드러내며 행복감을 느끼는 그의 마음에 박수를 보낸다. 이 짧은 소설이 이렇게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것은 자신의 평범한 삶에 균열이 가더라도 어두운 곳에 있는 누군가를 외면하지 않는 용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상황에서 아일린처럼 반응했을까, 펄롱처럼 행동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어둠에 홀로 있는 누군가를 외면하며 내버려두지 않는 그 용기.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무엇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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