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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Sep 07. 2021

[서평]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따뜻한 눈을 가진 소설가의 문장을 엿보다

  얼마 전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는데, 이번에는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이다. 두 작품 모두 소설가가 쓴 에세이이고, 문학에 대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등단하기의 과정을 담아 내고 있어 맞닿는 부분이 있다. 하루키카 재즈를 사랑했듯, 김연수도 대중음악 평론을 할 정도로 음악을 사랑했다. 일부러 찾아서 읽은 것은 아니고, 서가를 걷다 우연히 발견하여 집어 든 책일 뿐인데 필연과도 같은 이 접점에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하루키가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에 글을 쓰고, 매일 달리기를 하여 글을 쓰기 위한 육체의 뿌리를 견고하게 했다는 사실은 그가 예상 밖으로 얼마나 성실한 소설가인가를 보여준다. 김연수도 마찬가지로 글쓰기에 무척 성실한 시인이자 소설가이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그것을 옮긴 언어들을 보면 이성보다는 감성에 마음의 적을 두고 있는 것 같아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마음이 간다.      


  사이에 있는 것들, 쉽게 바뀌는 것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잡아끈다. 내게도 꿈이라는 게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끄는 그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11p)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랑을 글로 옮기고 있어서인지, 그의 글을 익는 순간순간은 나에게는 감탄스러운 것이었다. 그의 글을 읽지 못했더라면 느끼지 못할 감정과 애틋함, 사랑의 순간들. 그가 딸이 태어나고 자전거를 어린이 의자에 태우며 느낀 소회를 적은 글은 내게 그런 순간들을 일깨워줬다. 내 아이에게도 어린이 의자를 마련해 태우고 온 동네를, 안양천을, 동네 뒷산을 다니시던 친정 아빠가 계시기에. 이 글을 읽는 순간 내 아이를 태우고 볼을 간질이는 바람을 맞으며 아빠가 느끼셨을 사랑과 충만함의 감정들이 떠올라 마음이 뜨거워졌다.      


나는 여전히 열무에게 익숙하지 못한 아버지였다. 하지만 내게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그마저도 못할 뻔했다. 아이가 생기면 제일 먼저 자전거 앞자리에 태우고 싶었다. 어렸을 때, 내 얼굴에 부딪히던 그 바람과 불빛과 거리의 냄새를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받은 가장 소중한 것.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 집이 있어 아이들은 떠날 수 있고 어미새가 있어 어린 새들은 날갯짓을 배운다. 내가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한 번이라도 했다면 그건 아버지가 이미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 열무를 위해 먼저 바다를 건너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물론 어렵겠지만. (31p)   
  

  그리고 작가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글을 쓸 수 있다는 그의 글은 온 몸과 마을을 다한 것이기에 그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의 글은 이토록 아름답다.      


나는 운명도, 운도 믿지 않는다. 믿는 것은 오직 내 몸과 마음의 상태일 뿐이다. 인간이란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고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는 존재다. 나는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글을 쓸 수 있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p.69)    
 

멀어져가는 청춘에 대해.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라는 표현이 마음을 울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로 왔고 나를 떠났던 청춘의 시절.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수 있지만 조금은 어른이 덜 되어 모든 것이 낯설었던 나의 청춘. 그는 잊고 있던 청춘의 기록을 이렇게 일깨운다.      


그 집의 식구들은 모두 스물넷에서 서른 두 살 사이의 사람들이었다.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 늘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하는 나이. 옛 가족은 떠났으나 새 가족은 이루지 못한 나이. 그 누구와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으나 다음날이면 남남처럼 헤어질 수 있는 나이. 그래서인지 우리는 금방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친해질 수 있었다. (p.136)     

마지막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하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 난 스스로 빛나는 존재이기보다는 누군가를 빛나게 하는 존재의 위치에 있는 것 같다. 나의 아이,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우리 부모님. 어떤 사람이 한 명의 소설가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고 지지해줬듯, 나 또한 누군가의 내면에 숨겨진 한 움큼의 빛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조금씩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의 자리를 잘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일 수 있는지 알게 된 일이다. 내 안에는 많은 빛이 숨어 있다는 것, 어디까지나 지금의 나란 그 빛의 극히 일부만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일이다.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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