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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Aug 31. 2021

[서평] 한강, 희랍어 시간

  오래 전에 이 책을 몇 페이지 넘겨본 적이 있던 것 같아 낯익은 느낌이 든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끝까지 읽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책 속의 이야기가 마음 깊은 곳까지 와 닿아 울리며 나를 이끌었다. 

  언어를 온 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일 정도로 예민했고 언어를 감당하지 못해 말을 잃은 한 여인, 점차 시력을 잃어감에 따라 나날이 희미해가는 세계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한 남자. 여인에게는 아이가 있었고 재판 결과에 따라 더 이상 아이를 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희랍어 강의를 듣는다. 아버지의 가족력을 이어 받아 점점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는 남자는 일생의 절반씩을 고국과 타국에서 살아가다가 가족을 뒤로 하고 귀국하여 희랍어 강사 생활을 한다. 

 남자가 사고를 당하면서 안경이 부서지고 위험에 처하게 되자 여자는 그녀를 돕는다. 소설은 이 장면부터 참 아름답고 애틋해진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시각과 청각이라는 감각을 각각 잃어가는 그들이 (그들이 처음부터 그 감각을 갖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점점 잃어간다는 사실도 눈 여겨 볼만하다.) 서로의 기척을 느끼고 서로를 알아가는 그 과정이 아름답고 슬프다. 소설을 쭉 넘겨보며 이 작품은 왜 이렇게 시적(詩的)이지? 하는 의문을 가졌었는데 읽을수록 그 의문이 해소된다. 그들의 교감과 사랑은 복잡 다변한 언어로 기술된 성격이라기보다는 하나하나의 응축된 장면이고 영상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진 감각 하나하나를 생각한다. 그 감각이 나에게 주는 느낌과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외부 세계를 이해하는 문이자, 나를 밖으로 내보내는 문. 남자의 여자와 서로의 ‘기척’을 느끼기에는 감각의 결핍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상대의 존재 자체에 보다 투명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잠시 모든 감각을 내려놓고 나 자신에 침잠해 보고, 온전하게 이해하고 싶은 누군가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


이 소설과 함께 살았던 이 년 가까운 시간, 소설 속 그와 그녀의 침묵과 목소리와 체온, 각별했던 그 순간들의 빛을 잃고 싶지 않다.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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