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라시아 Sep 16. 2021

[서평] 천선란, 천 개의 파랑

휴머노이드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떨까


미래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한 번 쯤은 상상하는 이야기.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고 로봇이 인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세계의 일부가 되는 세상.

칩 하나가 잘못 들어가서 천 가지의 단어를 알게 된 휴머노이드'콜리'는 '투데이'라는 말과 함께 경마장의 기수로 달리지만, 승률을 높이기 위해 점점 무리를 하게 된 투데이의 몸이 쇠약해진다는 것을 직감한 콜리는 의도적으로 낙마한다. 그리고 그 순간, 콜리는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휴머노이드인 '콜리'가 투데이의 몸에서 전달해오는 진동을 통해 투데이의 감정을 알고, 투데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낙마하는 것은 문제의 칩 때문이겠지만, 여느 인간보다 때로는 묵묵하고 때로는 듬직한 대화의 상대가 되어 줄 수 있는 콜리는 어찌 보면 참 인간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주변에서 콜리보다 못한 '인간'들을 종종 만나지 않는가.  

  낙마를 한 후 하체가 거의 부서진 콜리는 '연재'라는 소녀를 만나면서 제 2의 인생을 살게 되고, 점점 쇠약해져서 안락사를 앞둔 투데이에게 '행복감'을 안겨 주기 위해 연재와 콜리는 다시 투데이를 주로 위에 세운다. 중요한 것은 '천천히 걷는 것'. 이를 위해 연재의 새로운 친구 지수, 수의사, 기자 서진, 연재의 언니 은혜 모두 같은 마음이 된다. 투데이가 마지막으로 주로에 서서 점점 빨라지자 콜리는 두 번째 낙마를 한다.

    

  나는 세상을 처음 마주쳤을 때 천 개의 단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천 개의 단어로 다 표현하지 못할, 천 개의 단어보다 더 무겁고 커다란 몇 사람의 이름을 알았다. 더 많은 단어를 알았더라면 나는 마지막 순간 그들을 무엇으로 표현했을까. 그리움, 따뜻함, 서글픔 정도를 적절히 섞은 단어가 세상에 있던가.
  천 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짧은 삶을 살았지만 처음 세상을 바라보며 단어를 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천 개의 단어는 모두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 좌절이나 시련, 슬픔, 당신도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이 전부 천 개의 파랑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파랑파랑하고 눈부신 하늘이었다. (소설 말미 인용)


투데이와 콜리가 바라 본 세상을 이렇게 막을 내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천천한 행진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런 의미에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먼 훗날 점점 우리의 자리를 대체하게 될 로봇, 로봇과 우리는 어떠한 관계를 맺게 될 것인가. '인간적'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로봇이 인간적으로 사고하고 느낀다면 로봇과 인간이 같아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동물과 인간은 어떤 관계일까.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살아가다 죽는 수많은 말들의 슬픔을 우리는 이 소설 이면에서 느낄 수 있다. 동물권에 대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의식하고 있고, 예전보다 그들의 삶에 대해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 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 수많은 동물들은 인간을 위해 살아갈 뿐이다. 존재 가치를 상실하고 버려진 로봇과 동물의 모습을 통해, 이용 가치를 판단하고 그 여하에 따라 그들의 존재 여부를 결정하는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우리는 지구상있는 이 존재들과 앞으로 어떻게 관계맺고 살아가야 하는가.

작가의 이전글 [서평]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