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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Sep 27. 2021

연두야, 내일은 내일에게

김선영, 내일은 내일에게

 ‘연두’라는 소녀의 이야기이다. 몸속에 눈물이 찰랑찰랑 고여 있다가 누군가 살짝만 건드려도 툭 넘어 흐를 것만 같은 연두. 연두는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나시고 새 엄마, 배다른 동생 ‘보라’와 함께 살고 있다. 다리 하나를 차이로 연두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저지대이고, 다리 건너 저쪽 세상은 사람과 현대식 문물이 모이는 신지구의 세상이다. 

  연두네 앞집 건물에 작은 카페가 생겼다. 모든 게 아날로그인 카페 ‘이상’. 이 공간은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끌어당기고 마음으로 안아주는 안식의 공간이다. 상처 많은 연두는 조금씩 카페 주인에게 마음을 열고, 학교에서 사귄 친구 ‘유겸’과도 손편지를 카페 안 우체통에 넣어 보내며 소통하기 시작한다. 카페에서 열린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전시에 참여해서 조금 다른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이해하기도 한다. 어릴 때 부모에게 버려져 프랑스에서 자라 온 ‘마농’이라는 여인도 카페 이상에서 도움을 받는다. 

  어느 날 사라진 보라와 엄마. 엄마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보라가 없는 건 다른 일이다. 연두가 마주했을 집 안의 적막, 그때의 기분을 어떠했을까.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라가 백혈병에 걸렸고 골수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흐와 동생 테오를 떠올리며, 조건이 된다면 망설임 없이 보라에게 골수를 줄 것이라고 다짐하는 연두. 


  나는 늘 결핍 상태였다. 누군가는 자동으로 채워지는 부분을 나는 끝끝내 채우지 못하고 영원히 부재인 상태로 끝나버렸다. 부재, 그것은 이생에서는 죽어도 극복되지 못할 거라는 걸 두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17p)


   연두가 소설 초반에 말한 자신의 결핍은 어쩌면 그 아이가 스스로 채워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롭게 죽음에 내몰린 소설 속 텐트남과 자신이 다르지 않다고 말하지만, 연두에게는 손을 내밀어 줄 따뜻한 존재들이 옆에 있다. 나도 카페 이상이 연두에게 그랬듯, 지친 사람에게 편안함과 존중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예쁜 찻잔과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이 아이에게 존중받는 느낌을 주었듯, 전단지를 돌리며 지나가는 한 여인의 목소리를 지나치지 않고 머무르게 했듯. 


카페 이상에 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은은한 커피 향이 기분을 돋우고 예쁜 찻잔의 손잡이가 손가락에 착 감기는 게 좋고, 무엇보다 차를 건넬 때의 아저씨에게서 존중이라는 것이 보여서 좋았다. 처음으로 내가 귀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카페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말이 많아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53p)


  소설이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교 폭력, 가정 폭력, 소외, 차별, 입양, 고독사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춘다. 하지만 연두라는 아이를 보며 일말의 희망을 찾아 본다. 적어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보게 된다. 내일은 내일에게. 오늘은 오늘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건물 옥상에서 맑은 공기를 한 움큼 마실 수 있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 그래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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