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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Oct 13. 2021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를 닮아가기 위해

유은실, 순례주택

  순례주택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큰 욕심 없이, 자신에게 더 온 것을 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건물주 김순례씨와 소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세입자들. 소설의 이야기 속으로 깊이 들어가기도 전에 순례씨라는 인물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자신에게 넘치는 부(富)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을뿐더러 환경을 소중히 한다. 원조 미니멀리스트이자 제로웨이스트의 실천가이다. 순례씨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녀의 생활 방식과 지향이 어떠한 당위나 명분이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비롯되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순례씨의 말을 들을수록 더 가지려고 했던 내가, 그리고 나도 모르게 1군들의 허영심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내가 부끄러워졌던 것 같다.      

   순례 씨는 개명을 했다. ‘순하고 예의바르다’는 뜻의 순례(順禮)에서 순례자(巡禮者)에서 따온 순례(巡禮)로. 나머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라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 (13p)    

   이 소설의 공간은 크게 순례주택이 있는 주택가와 원더그랜디움이라는 아파트가 있는 아파트촌이라는 곳으로 양분된다. 아버지의 집을 점거하고 아파트를 제 집인 것처럼 살아가는 1군들. 주인공인 수림의 시선에서 엄마, 아빠, 언니는 1군들이고, 어릴 때부터 순례씨의 손에 키워진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다.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으리으리한 아파트에 살며 주택가의 아이들과 자신의 아이가 섞일까 걱정하는 1군들이,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면서 순례주택에 살게 된다. 자신들이 내려다보던 공간의 사람들이 사실을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졌고, 건강한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들에게도 약간의 변화가 생긴다. 사람을 만나면 학번을 묻고 출신 학교를 묻는 몰예의를 범하는 1군들이지만, 자신들이 설정한 기준에서 벗언난 사람을 정상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는 하지만. 여전히 전임교수를 꿈꾸며 둘째 고모라는 구원투수만을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나는 순례씨에 가까운 인물인가, 아니면 1군들에? 확실히 규정짓기는 어렵지만 나 또한 순례씨가 거리를 두고 싶어하던 그 국경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구별과 차별, 정상과 비정상. 좋고 나쁨. 내면을 알알이 채우기도 전에 바깥 세상을 바라 보면서 선을 긋느라 시간을 허비했던 것은 아닌지. 내가 가진 것이 정말 내 것이 맞는지, 조금 더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지. 순례씨의 어눌한 말들에서 해답을 찾아 본다.   


순례 씨가 좋아하는 유명한 말 -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가 떠올랐다. 나도 순례자가 되고 싶다. 순례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내 인생에 관광객은 되고 싶지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 (99-1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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