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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Oct 25. 2021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에세이를 읽어 보고 이렇게 가슴이 아려오고 슬프기까지 했던 적이 있었던가. 박완서의 ‘나목’을 처음 읽고 문학이란 이런 것일까 하는 것을 어렴풋하게 알았던 것 같은데, 글 속에서 ‘나목’을 집필하고 당선되어 등단하게 되는 과정을 만날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오랜 기간 동안 써 왔던 산문들 중 몇 편을 골라 묶은 작품이라 50대의 박완서도, 70대의 박완서도 책 안에 있다. 그녀는 50대부터 흘러가는 시간을 인식하고 늙어가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서글픔도 느낀다.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과 임종 전 반짝이는 시간을 같이 보내던 것을 회상하며, 다시 철 없는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어떠한 이해 관계나 책임감 없이 남편을 남자로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너무 슬펐다.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내고 그녀가 보냈을 극한의 슬픔과 그럼에도 살아지는 인생에 대한 ‘누추함’을 느끼는 부분. 세 아이를 키우는 나로서는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런 내 새끼 중의 하나가 봄의 절정처럼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이 세상에서 돌연 사라졌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나도 곧 뒤따라게 될 테고, 가면 만날 걸,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만나서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건 포옹도 오열도 아니다. 때려주고 싶다. 요놈, 요 나쁜 놈, 뭐가 급해서 에미를 앞질러 갔냐, 응? 그렇게 나무라면서 내 손바닥으로 그의 종아리를 철썩철썩 때려주고 싶다. 내 손바닥만 아프고 그는 조금도 안 아파하고 싱글댈 것이다. 나는 내 손바닥의 아픔으로 그의 청둥 기둥 같은 종아리를 확인하고 싶다.” (276p)


언젠가 아가들을 만질 때의 보드랍고 차가운 감촉에 대한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다. 내게 아이들이 정말 있고, 살아 가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손으로 그 감촉을 선연하게 느낄 때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내 아이를 한 번만 만져 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 육체적 감각의 현존에의 희구를, 절절하게 알 수 있다.


“이런 찬란한 시간이 과연 내 생애에서 허락될까. 허락된다면 그때는 언제쯤일까. 10년 후쯤이 될까 20년 후쯤이 될까, 몇 년 후라도 좋으니 그때가 가을이었으면 싶다. 가을과 함께 곱게 쇠진하고 싶다.”(286p)


가을에 읽는 그녀의 글은 탄생과 소멸, 아름다운 것의 소중함 등 많은 것들을 나에게 전해 준다. 켜켜이 써 내려가는 글들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담고 있길 바라던 그녀의 글들은 그녀의 바람 이상으로 더 아름다운 진실을 담아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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