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올리버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서점에서 이 책 제목과 표지를 보고 ‘창문 넘어 도망간 100세 노인’과 같은 다소 유머러스한 내용의 소설일 거라 생각하고 무심히 넘겼었다. 그런데 설민석의 ‘책 읽어드립니다’를 유튜브에서 보고, 이책이 한 신경외과 의사가 쓴 여러 환자에 대한 기록을 모아 놓은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관심이 생겨 읽게 되었다.
책의 서문에는 ‘환자를 치료하려면 환자의 인간적인 존재 전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아야’ 하며, ‘병의 연구와 그 사람의 주체성에 대한 연구가 분리될 수 없다’고 보는 새로운 관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는데, 이 책은 이러한 통합적인 관점에서 환자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있다. 그 점이 참 마음에 든다. 세상에 이런 관점을 가진 의사들만 있다면 참 세상이 아름다울텐데^^;;
단순히 뇌의 어느 한 부분의 문제로 인해 이 사람은 이렇게 지능이 떨어졌고, 이러한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는 기계적인 논리가 아닌, 환자의 인생과 처한 상황 속에서 그의 서사를 존중해주는 관점이 참 인간적이었다. 기본적으로 환자에 대한 애정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런 관점, 그리고 이러한 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이책은 크게 <상실, 과잉, 이행, 단순함의 세계>라는 주제로 나뉘어져 있다. ‘상실’은 뇌의 특정 부분이 손상됨으로써 특정 신경 혹은 정신 기능의 일부를 ‘상실’하는 것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의 제목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도 시각적인 인식불능증을 다루고 있다. 그는 감정, 구체성 등을 잃어버리고 추상적, 범주적인 것만을 안고 살아간다. ‘침대에서 떨어진 남자’나 ‘몸이 없는 크리스티나’의 사례도 인상적이었다.
‘과잉’은 기능의 과잉, 즉 ‘과다현상’에 대해 다룬다. ‘익살꾼 틱 레이’의 사례, ‘투렛 증후군에 사로잡힌 여자’의 사례가 나온다. 레이는 “나는 틱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미 틱으로 인한 과잉이 삶 자체였고, 조건적인 치료를 통해 증상과 타협한다.
‘이행’에서는 주로 ‘회상’, 즉 사람을 과거로 이행시키는 심상과 기억의 힘에 대해 다룬다. 젊은 시절에 듣던 노래가 어느 날 생생하게 들려온다는 C부인의 사례가 그 예.
그녀는 발작을 통해서 심리적인 안정과 현실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뿌리 없는 풀처럼 살았단 그녀가 아무리 원해도 얻을 수 없었던 소중한 감각이었다. ....나에게는 회상이 필요합니다. 지금과 같은 상태가 필요해요.
그녀는 오히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인 뇌졸중이 치료되면서 증상도 사라지고, 우울증에 시달린다. 증상을 통해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만날 수 있던 그녀를 보면서, 증상이 발현과 치료가 무조건적인 한쌍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함의 세계’에서는 ‘구체성’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세계를 구체적인 것, 상징으로 이해하는 그들의 사례로 모든 것을 시적인 언어, 이야기로 이해하는 리베카, 그로브 음악 사전을 완벽히 암기한 마틴의 사례. 각각 연극을 함으로써, 성가대에서 노래를 함으로써 그들은 낮은 지능에도 불구하고 진실한 존재로 거듭난다.
“지능이 낮은 사람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까닭은 그들에게 ‘창조적인 지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해하고 소중하게 키워주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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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자폐증을 앓고 있지만 숫자에는 천재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던 쌍둥이 형제의 경우, 여타의 이유로 그 둘을 떼어놓음으로써 능력은 사라지고 ‘버스 정도는 탈 수 있는’ 사회인이 되어 버린다. 이 장에서는 내가 학교 현장에서 보아 온 자폐를 앓고 있는 학생들이 떠올라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혹시 그 아이에게도 이러한 감각이나 능력이 있었을지도 하는 생각, 그 아이는 어떠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
책에 소개된 다양한 사례를 보니, 뇌와 정신, 그리고 육체의 연결고리가 정말 신비로울 뿐이다. 그리고 여러 환자들을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삶의 좀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노력한 저자의 관점에 지지를 보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