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선, 꽤 괜찮은 해피엔딩
교통사고로 전신화상을 입고 제2의 삶을 살아온 이지선씨. 그녀의 두 번째 책이다. ‘지선아 사랑해’라는 첫 책을 읽은 후 그녀도 나도 각자의 시간을 살았다. 사고 피해자가 아닌, 자신으로서의 삶을 열심히 살아온 그녀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 공부하고 지금은 한동대 교수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박사논문까지는 아직 못 썼지만, 석사논문을 쓰면서 논문이 주는 고통을 어느 정도는 느껴보았기에 그녀의 유학기는 많은 공감이 되었다. 게다가 미국에서 수업을 듣고 말하고 글쓰는 일은 몇배로 어려웠을 것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 예상치 못한 일들을 우리 인간은 겪으면서 살아간다. 그 어려움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니, 사람은 그 경험 여부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그 이후의 대처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운명에 인간의 지분이 있다는 것이다. 나조차 앞으로의 삶이 찬란할지 어두울지 알 수 없는데, 다가오는 일들에 담대하게 대처하고 이겨낼 수 있도록 더 단단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내면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내면이 곧게 서지 않고 무너지면 나를 둘러싼 온갖 것들이 흘러내린다.
책을 읽으면서 ‘비교행복’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이들과의 상대적 비교를 통해 안정감이나 만족을 얻는 이들이 종종 있다. 나의 불행을 솔직히 고백했을 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내가 그 일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위안은 준다면 참으로 힘이 빠질 것 같다. 그저 불행한 이에겐 진심으로 위로를, 행복한 이에게는 축하를 할 수 있기를. 그리고 나의 행복의 척도는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서 찾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슬기로운 병원생활’을 쓴 부분도 인상깊었다. 종종 내가 의료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조금 더 공부를 해서 의사가 될걸. 아니면 간호사라도! 약사라도! 환자가 되어 병원 문턱을 넘는 순간 나의 서사는 무시되고 그저 ‘환자’가 된다. 그저 치료해야 할 수십 명의 환자 중 한 명이고, 아픔을 호소하며 손을 들고 있는 사람이 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병원에 더욱 자주 드나들게 되면서 느끼는 것은 병원이라는 공간은 여전히 권위적이며 환자는 존중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병원이라는 공간이 조금 더 여백이 채워지는 곳으로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겠지만, 조금 더. 아니 많이 더.
이번 에세이는 사고를 당한 이지선씨의 사연이 아니라, 그녀가 어떻게 성장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현재 진행형 이야기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팍팍한 일상에 조금이나마 힘을 얻게 된다. 좀더 힘내서 잘 살아보라고, 그녀가 위로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