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혜숙 Jul 12. 2017

시간의 문 '침실' 의 물건

늘 머무는 공간, 늘 사용하는 물건이 일상을 지배한다.



꿉꿉함을 느끼며 새벽에 잠이 깼다.

지난 토요일, 잘 말려서 넣어둔 새 이불로 갈았는데 그새 매일 조금씩 습기를 빨아들인 것이다.

진득거리는 느낌에 짜증이나 이불을 걷어차고 앉아 멍한 얼굴로 아무렇게나 구겨진 이불을 노려봤다.

머리도 띵하고 어깨도 아프고 얼굴도 퉁퉁 부은 것이 모두 저 이불 때문인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저 이불 때문이었다.

새 이불로 바꾼 날, 바스락 거리는 이불의 보송보송한 촉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행복하게 숙면을 취했던 것이 저 이불의 덕이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불 덕(?)에 오늘 내 영혼은 눅눅한 습기를 한껏 머금은 채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시간의 문' 침실


침실은 오늘 하루의 마지막 여정이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공간이다.

하루 종일 무질서하게 쌓인 감정들을 질질 끌고 들어가 시간과 함께 뒤편에 남겨두고 아침이면 새로운 하루의 문을 여는 공간이다.


새로운 주를 위한 의식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주름과 땀으로 눅눅해진 이불을 걷어내고 깨끗이 세탁한 새 이불로 갈아주며 새로운 한주를 위한 의식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공간이다.

새 이불에서 나는 기분 좋은 냄새를 맡으며 새 계절을 맞이하는 공간이다.

어느 날 문득 계절이 바뀐 것을 옷이 아니라 이불에서 먼저 느낄 때가 있다.

이불이 갑자기 너무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지거나 냉랭하게 한기가 느껴지면 지난해 잘 말려서 장롱에 넣어두었던 새 이불을 꺼낸다.


짧은 휴가를 매일 떠나는 공간이다.

침실은 휴식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며, 따뜻함과 아늑함으로 어루만져지는 위로의 공간이고, 몸과 마음이 다시 힘을 얻는 회복의 공간이다.

휴가지에서 주로 머무는 호텔은 잘 말려 바스락 거리는 새하얀 침구가 매일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휴가에서 얻고자 하는 기분전환이나 휴식의 상당 부분이 충족되는걸 종종 경험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 정갈하게 이불을 정돈하는 작은 습관과 깨끗이 세탁한 이불로 자주 바꿔주는 부지런함만 있다면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매일매일 짧은 휴가를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일상의 민낯은 그 사람만의 공간과 물건에서 더 잘 나타난다.

사람들은 보통 겉으로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된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염려해 자신의 본래 취향을 어디선가 본듯한 익숙한 모습으로 다듬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오염된 '나의 취향'을 위해 사람들은 종종 시간과 돈을 낭비하기도 한다.

옷이나 가방, 신발 같이 몸에 두르는 물건이나 커피, 차, 와인 같은 기호식품들 때론 집 인테리어 같은 것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아는 방법은 그 사람의 집에 가보는 것이다.

집에서도 가장 개인적인 공간인 침실은 가장 그 사람다운 공간일 것이다.

여간해서는 집을 방문한 손님들에게도 침실은 공개되지 않는 공간이다.

침실 문은 보통 닫혀 있거나 열려 있어도 함부로 들어가기 어려운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 어떤 물건들을 놓아두고 있는지, 물건이나 침구가 정갈하게 잘 정리되어 있는지, 침대나 침구는 어떤 걸 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침실은 남에게 공개할 필요 없는 가장 사적인 공간이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면 가장 소홀하게 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더군다나 침실에 있는 침대나 침구 같은 것들은 자주 구매하는 물건도 아니니 불편한 것이 있어도,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어도 자꾸만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수록 보다 근본적인 가치에 집중할 수 있다.

침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자유롭게 가꿀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다.

매일 밤 나의 영혼을 덮는 이불, 짧은 시간 여행을 함께 하는 침대, 그리고 동행하는 물건들..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고 소홀히 할 수 없으며 유명 브랜드나 트렌드, 할인으로 선택된 물건들이 정작 나를 소외시키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쾌적하고 편안하며 안락한 휴식의 공간인 침실은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삶의 질을 만족스럽게 높여주는 생활의 기본일 것이다.



늘 머무는 공간, 늘 사용하는 물건이 일상을 지배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음식에 존엄을 담는 물건 '그릇'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