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혜숙 Jun 30. 2017

음식에 존엄을 담는 물건 '그릇'

늘 머무는 공간, 늘 사용하는 물건이 일상을 지배한다.



물건이나 음식을 담는 '그릇'

사람의 도량이나 능력을 말할 때도 '그릇'이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고 보니 그릇은 무엇을 담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완결성을 갖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릇'은 어떤 가치를 가진 물건일까?


사용하는 사람의 일상이 스며드는 물건이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집엔 세트로 마련한 반짝이는 그릇들이 찬장에 예쁘게 놓여 있지만 살림을 오래 했거나 혼자 사는 사람들의 집엔 보통 짝이 맞는 그릇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필요할 때마다 한두 개씩 사거나 선물로 받았거나 언제 들여왔는지도 모르는 그릇들이 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유난히 어떤 그릇에는 사용하는 사람의 시간이 많이 스며들어 있다.

거의 매 끼니마다 어떤 음식도 마다하지 않고 담아내며 편애를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릇들은 보통 제 용도가 굳이 정해져 있지 않다.


이가 빠지거나 금이 간 그릇은 찬장 깊숙한 곳으로 영원히 사라지거나 재활용 더미에 휩쓸려 버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편애를 받던 그릇은 꽃 몇 송이를 담은 화병이 되거나 화분 받침이 되어 다시 같이 살아보자 한다.


음식을 담아 마음을 담는 '한 그릇' 이 되기도 한다.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다시 맞이한 계절의 설레는 마음을,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추억의 따뜻한 마음을, 하루를 이겨내는 응원을, 건강을 염원하는 마음을, 마음의 여유를..

그릇 가게에서는 모두 똑같은 물건이었다가 음식을 담으며 서로 다른 '한 그릇'이 된다.


아름다운 수집품으로서의 가치를 가진 물건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품위를 잃지 않고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온 명품이나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가진 장인의 정직한 노력이 만들어낸 수공품은 그릇이 무언가를 담기 이전에도 충분히 그 자체로서 아름다운 물건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귀한 살림으로서의 물건이었다.

70~80년대 생활상을 보여주는 드라마를 볼 때면 비슷하게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양은 밥상이나 나무로 만든 허름한 밥상엔 또 그처럼 허름한 그릇들이 놓여있지만 찬장엔 반질반질한 형형색색의 꽃무늬 그릇들이 진열되어 있는 모습이다.

어린 시절 우리 집 귀한 그릇들은 손님을 대접할 때나 몇 번 찬장에서 꺼내어졌다.

그러다 결국 몇 번 써보지도 못하고 유행이 한참이나 지나버리는 아이러니한 물건이었다.


생활의 가치를 담는 물건이다.

일상이 정신없이 바쁠 때는 밥상을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다.

밥상에 올려지는 음식, 음식을 담은 그릇까지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반찬통이나 김치통, 프라이팬을 그대로 밥상에 올리거나 밖에서 포장해 온 음식을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포장 용기에 그대로 놓은 채 차린 밥상은 '너무 나의 생활에 무심한 것은 아닌가'하는 자괴감이 들게 할지도 모른다.


삶의 질은 비싼 집과 자동차, 브랜드 그릇 만으로는 완성되지 못한다.

변변하게 차린 것 없이도 음식마다 적당한 그릇에 정갈하게 담아 차려내는 밥상은 그것만으로도 자존감과 삶의 질이 높아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설거지를 조금 더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생활이다.




그릇은 그 사람의 생활을 반영한다.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먹는지, 어떤 음식을 주로 먹는지, 커피나 차를 마시는 시간을 즐기는지...

그릇은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 중 하나인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물건이다.


사람의 마음까지 닿는 매일 먹는 음식들,

그 음식들을 담는 그릇은 그래서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상의 물건이다.


하루 한 끼, 혹은 일주일에 한 끼라도 방금 한 따뜻한 음식을 제대로 된 그릇에 정갈하게 차리는 의식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일상일 것이다.






'나의 그릇'은 언제부터 갖게 되었을까?


분명하게는 집에서 나와 자취를 하면서부터일 것이고 그 이전엔 유아기 때를 제외하고는 '나의 그릇'은 없었다.

아버지와 엄마의 그릇과 수저만 따로 구분되어 있었지 그 외의 식구들은 누구의 것이랄 것도 없이 공용 그릇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나와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갖게 된 나의 그릇은 그동안 여러 버전을 거쳐왔다.

처음엔 집에서 나올 때 엄마가 챙겨준 그릇들로 쓰기 시작했다.

나의 살림이란 개념도 없이 밥그릇, 국그릇, 반찬접시, 컵, 냄비, 프라이팬 등이 거의 전부였다.

임시로 생활하는 것 같은 자취의 개념에서 온전한 나의 삶을 찾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내 취향의 살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취향의 그릇들이 한두 개씩 새로 생기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는 '나의 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부터다.

나의 생활에 대한 관심은 내가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의 중요함을 깨닫게 하고 그때부터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음식을 직접 만들기 시작하면서 내가 만든 음식을 담는 그릇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릇의 개수가 엄청나게 늘어나지도 않았다.

용도별로 따로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당하겠다 싶은 그릇 하나를 이런저런 용도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넙적하고 커다란 면기는 때론 국그릇이 되었다가 때론 칼로 뚝뚝 썬 수박을 담기도 하고 때론 김치전의 반죽을 섞기도 한다.


물건에 대한 소중함은 가지고 있는 개수에 반비례한다.

지금 나의 찬장은 뭐하나 특별한 것도 없지만 내가 좋아하고 사용하기 편리하며 활용도가 높은 그릇 몇 가지로 채워져 있다.




좋은 음식은 좋은 그릇에 담고 싶은 마음처럼

좋은 그릇에는 좋은 음식을 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좋은 음식이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 더 많은 들어간 것이듯 좋은 그릇은 좋은 음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는 물건이어야 할 것이다.


'좋은 그릇'이란 무엇일까?


그릇 자체가 갖는 가치도 중요하겠지만 그릇은 무언가를 담았을 때 그 가치가 완결성을 갖는다. 좋은 음식을 담고 싶은 아름다운 그릇이어야 함은 필수일 것이다.


또한 비싸고 귀한 그릇은 무언가를 담아 사용하는데 매사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으니 의도치 않게 물건으로부터 행동이 구속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실용성과 물건의 시장 가치에 지배당하지 않을 만큼의 가격을 가진 그릇이라면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늘 머무는 공간, 늘 사용하는 물건이 일상을 지배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을 초라하게 만드는 '일회용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