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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숙 Jun 13. 2017

일상을 초라하게 만드는 '일회용품'

가벼운, 너무나 가벼운 일상

늘 머무는 공간, 늘 사용하는 물건이 일상을 지배한다.



물건에도 시간이 스며들면 그 물건의 생명인 '영혼'이 생기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곁에서 함께한 물건들은 사람들의 시간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공장에서 출시된 물건의 반짝임과는 달리 오래된 물건에는 마치 사람의 그것처럼 주름이 잡혀 있다.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의 시간이 차곡차곡 여러 겹으로 스며든 물건은 그래서 본래의 아름다움 이상의 아름다움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일회용품'엔 사람들의 시간이 스며들지 못한다.

누군가의 시간이 스며들 만큼 애지중지하는 손길을 받을 새도 없이 '쓰레기'로 버려지기 때문이다.


한번 쓰고 버려도 되도록 만들어진 일회용품은 '편리함'의 상징이다.

일회용품의 '편리함'은 그 물건에 대해서 어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자유로운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필요에 의해 잠시 사용한 후 곧바로 버려도 되는 물건이니 그 물건에 대해 내가 져야 할 책임이 쉽게 인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의 콘셉트는 그래서 그 물건의 존재감을 별거 아닌 것처럼 위장한다.

이는 일회용품에 의한 환경오염의 심각성이 이미 널리 알려진 상식이 되었어도 여전히 그 사용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근본적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일회용품 사용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가능하면' 사용을 줄이기 위해 텀블러나 손수건, 개인 수저를 들고 다니는 대안을 찾거나 재활용 분리수거, 리사이클링 같은 사후 노력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일회용품은 점차 진화하여 최근엔 '친환경 일회용품'도 많이 등장하여 사람들의 죄책감을 흐릿하게 하고 있다.

환경호르몬 같은 유해한 물질이 배출되지 않는 친환경 소재로 만들거나 땅에 묻으면 1~2달 안에 생분해되는 성분으로 만든 것,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질 좋은 일회용품들이다.


죄책감이 들긴 하지만 한번 편리함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의 일상에서 일회용품이 차지하는 필요를 시장이 그대로 간과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친환경'과 '일회용품'이 이율배반적일지라도 말이다.




시간이 스며들지 못하는 물건들,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가장 빠르게 쓰레기로 버려질 물건들로 가득한 일상,

'일회용품'만큼 우리의 삶을 초라하게 만드는 물건이 또 있을까?




편리함을 대신하여 나의 시간이 스며든 '나의 물건'만 사용하는 생활을 상상해 본다.


편리함을 대신한다는 건 보잘것없는 소소한 일에 시간을 더 써야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다시 사용하기 위해 세척을 하고, 오래 쓰기 위해 관리하고, 집안의 공간 어딘가에 자리를 내어 보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여기는 것들로 늘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에겐 무의미하고 귀찮은 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중요한 일들만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소소한 일들이 매일매일 비슷하게 반복된다. 그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일상(日常, 매일 반복되는 보통의 일)'이지 않을까.


중요한 일이건 소소한 일이건 늘 생각을 다듬어야 할 것은 '일상의 가치' 즉 '삶의 가치'를 무엇에 두는가 하는 자신의 선택일 것이다.



늘 머무는 공간, 늘 사용하는 물건이 일상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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