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혜숙 May 30. 2017

휴식의 공간 '의자'

'나의 의자'를 갖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나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

늘 머무는 공간, 늘 사용하는 물건이 일상을 지배한다.



의자에 앉는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나에겐 '휴식'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서거나 걷던 몸을 구부려 의자에 앉는 순간 입에선 가느다란 탄식이 터지고 딱딱하던 몸의 긴장이 스르르 이완된다.

앉아 있으면 바람도, 풍경도 달라진다.


의자는 어떤 공간에 어떤 모습으로 있더라도 내가 앉았던 곳엔 어떤 친밀감이 느껴진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일어나면서 내 체온이 조금은 남아 있는 의자를 뒤돌아 내려다보는 순간도 어쩐지 정답다.

오래 머물렀을수록, 많은 생각이 지나간 곳일수록 그 의자는 더욱 특별해 보인다.




우리 집엔 작은 2인용 소파와 오래되어 가죽이 헤진 사무용 의자, 아일랜드 식탁용 키높이 의자가 있다.

소파는 패브릭으로 되어 있어 자주 세탁을 하지 않기 위해 집에 있던 작은 담요나 쓰지 않는 커다란 숄 같은 걸로 덮어 놓았다.

그래서인지 어쩐지 나의 취향과는 다르게 형형색색의 히피스러운 공간이 되어 버렸다.

이 소파는 TV를 보며 밥을 먹거나 노트북으로 작업을 할 때 주로 이용한다.

물론 날 좋은 휴일 낮엔 베란다 창문을 열어 놓고 바람을 즐기며 낮잠을 자기도 한다.


오래되어 가죽이 헤진 사무용 의자는 사실 오랫동안 베란다에 방치되어 있다.

버리지 못해 이사할 때마다 끌고 다니니 이젠 천덕꾸러기와 다름없다.

이제 더 이상 책상에 정자세로 앉아 책을 읽거나 일을 하지 않으니 이 의자와 세트인 책상도 물건을 올려놓는 선반이 되었다.


이케아에서 산 아일랜드 식탁용 키높이 의자는 새로 이사 온 집에 아일랜드 식탁이 없어지면서 그 용도를 잃었다.

지금은 조명을 받치는 받침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오래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이 의자에는 어떤 애틋한 기억이 없다.

사실 이 의자는 이전 집에 아일랜드 식탁이 있어 구매한 것이지 거의 사용한 적이 없는 의자다.


그나마 나에게 친밀한 의자는 소파라고 할 수 있는데 그마저도 내 취향이 아니니..

요즘엔 소파를 덮고 있는 천들을 걷어내고 내 취향의 천을 사다 둘러볼까 궁리 중이다.




의자를 고를 때 좀 더 나의 라이프스타일 취향이나 어떤 구조의 집에서도 의자가 스스로의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을 구입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다면 집안 구석구석에 좀 더 오래된 기억이 남아있는 특별한 의자들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지 않았을까.


다음번 의자를 살 기회가 왔을 땐 집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놓을 안락한 티타임용 의자를 골라봐야 할 것 같다.

이사를 자주 다니는 전세 난민이니 작고 가벼우면 더 적당할 것이다.

 



'나의 의자'를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또 하나의 나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의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의자와 내 몸을 둘러싼 공기와 그 안에서 느끼는 보다 깊은 평화를 상상하게 된다.


가장 친숙한 사람들인 가족들과 공유하는 집에서도 혼자만의 공간은 필요할 것이다.

반드시 벽으로 분리된 방이 아니어도 '나의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만큼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으며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집이 좀 더 평화로운 공간이 되지 않을까



늘 머무는 공간, 늘 사용하는 물건이 일상을 지배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건 이야기 #2/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