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경신
이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고 헤르만 헤세는 말했고 일생 동안 만 권의 책을 읽지 못한다고 말라르메는 통탄했는데
무슨 대단한 것을 이루겠다고 홀로 성을 쌓고 단단해지겠는가.
뭘 어쩌겠다고 닥쳐오는 바람을 피하겠는가.
삶이 허락하는 한 삶 속에서
빛이 허락하는 한 빛 속에서
가난하고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 속에서
그렇게 흔들리다가
언젠가 죽음과 어둠이 나를 더 사랑하는 날이 오면
조용히 복종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