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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nie Volter Oct 03. 2016

[영화리뷰]립반윙클의 신부

편리를 쫓다 고립된 현대인들의 웃픈 초상

지난 주 개봉신작들 중 가장 만족스럽게 본 작품. <하나와 앨리스> 이후 이와이 슌지 감독의 12년만의 실사영화작품이라는 소개만으로도 반드시 봐야겠다는 심정으로 관람했습니다. 
SNS를 통한 삶에 길들여진 여주인공 미나미는 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인 결혼마저도 데이팅 앱을 통해 결정할 정도로 소신이나 판단력이 결여된 캐릭터입니다. 핸드폰 앱을 통해 추천되는 정보만 믿고 자신과 맞는 사람이라 판단하고 결혼을 결정해버리죠. 이런 그녀의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이혼한 가정에서 홀로 살아온 불안정한 기간제 교사라는 설정을 붙였지만 SNS가 고도로 발달한 우리나라 특성상 크게 저항감있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빈약한 인간관계 때문에 결혼식에 부를 사람이 없어 고민하는 미나미는 이런 문제마저도 SNS로 해결하려고 하고, 그때 그에게 접근하는 이가 아무로라는 인물이죠. 그는 경제적 대가를 취하며 SNS 네트워크를 통해 하객으로 동원할 사람들을 조직하여 각자에게 훌륭한 배역을 맡겨 세레모니를 무사히 마치게 합니다. 
이후 미나미는 그에게 의문과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무로에게 기대고 아무로는 상황을 조작하며 그녀를 자유롭게 제어하게 되죠. (결과는 스포이기에 말하기 어렵지만 안좋다는 것은 예감하기 어렵지 않을 겁니다.) 
중반까지는 휘둘리는 미나미의 모습을 그린다면, 후반까지는 그런 미나미가 그녀와 같은 고독한 삶을 사는 마시로라는 캐릭터를 만나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배경과 사정은 다르지만 관계없이 홀로 남아 사는 이들이 각자에게 의미를 부여하며 아둥바둥 그저 살아가며 하루를 이어가는 모습은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어쩌면 아무로마저)마저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넘어갈 때쯤 결말을 어렴풋이 예상할 수 있지만 그때쯤이면 이 영화에 몰입되어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한눈 팔기는 어렵습니다. 
작품에 따라 화이트 이와이, 블랙 이와이로 나뉘는 이와이 슌지의 작품 중 이 작품은 두말할 것 없이 블랙 이와이입니다. 허나 선악의 구분을 넘어서는 현실성 때문에 장르를 나누기에는 많이 애매합니다. 스릴러와 미스테리, 로맨스를 넘나드는 복합물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네요. 
주연배우 쿠로키 하루는 감독의 전작인 '하나와 앨리스'의 아오이 유우와 매우 비슷한 이미지의 배우라 놀랐어요. 우유부단하고 조그마한 돌발 이슈에도 어쩔 줄 몰라 남의 말에 시키는대로 따르고, 본인의 주관없이 한 선택이 남에게 상처가 되는지도 모르는 천연백치 캐릭터를 잘 연기해냈어요.(배우의 이미지가 한몫 제대로 했네요.) 
악의 축(?) 아무로 캐릭터를 연기한 '아야노 고'는 외모만큼이나 느껴지는 분위기가 불길합니다. 선인지 악인지 종잡을 수 없는 마스크가 배역에 더해져서 이 사람이 등장할 때마다 그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집중하고 보게 되네요. 스크린 밖에 있는 관객임에도 여주인공이 그와 만날 때마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하고 지켜보게 됩니다. SNS를 통해 단선적으로 맺어진 관계를 교묘히 컨트롤하여 파괴와 창조를 번복하는 그의 예술적인(?) 행태를 보게되면 편리에 취해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지금이 얼마나 위험한 시대인지 알게 되어요. 상대에 대해 알기를 원지 않기에 아무로 같은 인간에게 속절없이 당하는 수많은 SNS로 맺어진 사람들을 보며 나에게도 저런 점이 없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어쩌면 악마는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닌 인간의 약점에 기생하는 기생충인지도 모르겠네요.) 
상영시간이 거의 3시간에 가깝습니다. 일본영화가 취향이 아니신 분들에게는 상당히 괴로운 시간이 될 수도 있어요. 
허나 '아수라'를 위시한 지난주 개봉작들이 다소 단선적인 주제와 스토리를 가진 작품인데 반해, 예술작품과 대중작품 사이의 절묘한 균형점을 취하면서도 입체적인 작품이기에 더 개성있고 매력적으로 관람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는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P.S 1 : 영화 내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클래식 음악(G선상의 아리아 등)이 주는 기묘한 모순과 아이러니가 일품입니다. 휴일의 마지막 영화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P.S 2 : 원작은 3시간인데 한국판 상영버전은 2시간으로 편집되었습니다. 완전판 버전은 따로 찾아보시거나 추후 스토어에 올랐을 때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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