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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nie Volter Oct 19. 2016

생각해본다

- 이병률

내가 가는 길이 제 길이 아니었음 싶다. 길이 아닌 길은 두렵고 아득하겠지만서도 동시에 당신에게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도 할 테니까.
행복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가 행복보다 더 큰 무언가를 위해 사는 거라면, 행복보다 진정 더 큰 무엇의 가치가 있기는 한 것 같으니 그것으로 대신하기로 한다.
비극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대신 눈물이라는 감정만 사용했으면 싶다. 상처라는 말에 끌려다니기보다는 무시라는 감정으로 버텨냈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안 좋은 저 일과 안 좋은 이 일이 겹쳤으면 한다. 그 국면을 뛰어넘기 위해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에너지를 쏟게 될 테니, 그런 다음 엄청난 기운으로 솟구쳐 되살아날 테니.
마취를 해도 마취가 안 되는 기억의 부위가 하나쯤 있었으면 한다. 그것으로 가끔은 화들짝 놀라고 다치고 앓겠지만 그런 일 하나쯤 배낭이라 여기고 오래 가져가도 좋을테니.
조금은 벙벙해 있는 상태에 놓이는 것이 낫겠다. 그것이 가볍고 그것이 사무치게 자유롭겠다.
그러니 모든 것이 넘치는 세상에 문득 방문을 하시는 허무와 허전에게, 가을날 문득문득 우리의 심장을 두드리는 이 공허에게 대접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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