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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nie Volter Oct 20. 2016

어지간히 따로가 아름답겠습니다

- 이병률

더 이상 당신과 같이 지낼 수 없다고 말해야 할 때, 어떤 말이 좋을지.
그것은 물기를 막 닦은 유리잔처럼 빛나면서도
잘 다려진 와이셔츠처럼 단정해야 할 것이지만.
더이상 같이 지낼 수 없을 것 같은 게
이렇다 할 이유가 없는 것이어서 충분히 고통스럽다면.
그 고통을 고스란히 담은 말을 꺼내야 할지,
소극적인 말 몇 마디를 쏟아붓고 그쳐야 하는 건지.
살아보니 당신이 보였습니다, 라는 첫 문장으로 편지를 쓰면서
당신하고는 이토록 소박한 삶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라든가
어지간히 따로 지내는 것이 아름답겠습니다, 라는 말을 적는 건 어떨지.
아무리 긴 시간을 꾸민다 해도 더이상 같이 지낼 수 없다는 것은
공기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것일 테니.
근사한 말들을 동원해 마술을 보여줄 것도 아니라면
게다가 장엄한 결말을 내기엔 주인공들이 지쳐 보이므로.

불확실한 것으로 연명하는 것은 어쩌면 죽음이기도 한 것이니
안녕, 안녕. 안녕이라고 백번을 말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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