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nnie Volter Dec 12. 2016

판화처럼 나는 삽니다

- 김성대

판화처럼 나는 삽니다
날마다 나비의 무늬를 읽으면서
서부음악을 듣습니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채식을 주로 하는 편이지요
우연히 상추에 붙은 나비 알을 먹고 나선
나도 모르게 뒤꿈치가 들려요
그럴 땐 빠리나 서귀포가 생각납니다

판화처럼 나는 삽니다
어떤 날은 터널이 계속 이어지기도 하지요
터널 저쪽엔 비가 오기를 바라지만
터널 그리고 터널, 뿐이지요
물잠자리의 날개와 독버섯의 얼룩이
눈 앞에서 맴돌아요 그럴 땐
아주 먼 옛날이야기를 듣고 싶어집니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책방에 갑니다
거기서 사랑의 묘약을 찾은 적이 있어요
부끄럽게도 마음이 설레었던 거지요
그렇지만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는 걸 믿습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박쥐들과 부릅뜬 부엉이들이
나의 행운을 뜯어먹으러 달려들 거에요

가끔 꿈속에서 운 날의 아침은 눈이 맑습니다
그럴 땐 눈 위에다 예쁜 나비를 새기고 싶어요
눈꺼풀을 깜빡일 때마다 날개가 잡혔다 펼쳐지겠지요
판화처럼 나는 삽니다
언제 한번 놀러 안 오시겠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 구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