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독촉 소동

by 병아리 팀장

우리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분이시다.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열살 전부터 스스로 학비를 벌어 학교를 다녔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동생들 대학까지 보내신 대단한 분이시다. 그렇게 없이 자라셔서 지금의 경제력을 갖추신 후에는 자식과 친척들에게 용돈을 주는 것에 큰 자부심과 기쁨을 누리시기도 하신다.
문제는 바로 여기부터. 바로 이 돈으로 상처받고 돈으로 자신감을 얻는 과정에서 생긴 '대인배' 코스프레 때문에 예순이 넘은 나이에 아버지는 때 아닌 곤욕을 치르고 계신다. 바로 부채다.
아버지는 빚은 없지만 못받고 있는 돈이 꽤 많다. 내가 파악한 것만 하더라도 1억 7천만원에 달한다. 이 1억 7천은 현 시점이 기준이 아니라 최대 10년 전부터 최근 5년까지의 빌려준 돈의 합산을 말한다. 즉, 물가인상분을 합쳐 생각한다면 2억초과 3억 이하의 금액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는 사기에 흔들리실 정도로 팔랑귀는 아니지만 정에 약하시고, 또 본인이 인정하는 사람이 제안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에도 약하시다. 그래서 친구가 같이 구매하자고 했던 땅에 돈이 묶였고, 직장 다니면서 알고 지내던 전문직 그룹의 공동으로 투자하자는 제안도 뿌리치지 못했다. 그 돈은 어머니가 아버지 월급을 아끼고 아껴 모은 것인데 기약없이 묶인채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너무 착하신 분이기에 아버지에게 아무 말을 못하지만 나는 다르다. 아버지가 힘들 때 쉬게 해드리는 것 대신 등을 밀어드리고, 아버지가 졸릴 때 침대로 안내하는대신 잠깨라고 물을 떠드리는게 내 삶의 방식 아니던가. 때문에 나는 출, 퇴근길마다 아버지에게 못받은 채권에 대한 독촉을 매일 같이 한다. 말하자면...

"아부지, 못 받는 돈 받아내는 거 간단합니다. 내 잠 깨울 때 하는 것처럼 말예요. 전기장판에서 코드 뽑고 이불 치워버리고 침대에 드러누워보이소. 돈 잘 줄겁니다. 죄없는 내는 왜 맨날 못살게 굴고 왜 아버지 돈 떼먹은 놈들한테는 가만히 계신교?"
"아가리 안닥치나. 그래서 나오는 돈 같으면 내 진작에 안했겠나. 내 돈 갖고 내가 투자한긴데 왜 호로자식인 니는 맨날 내돈갖고 졸라대노? 혹시 유산이라도 노리는거 아니나?"
"맞소. 유산 주이소. 있는 거 없는 거 다 주시면 좋은 데 쓰고 살겠습니더."
"닥치라 안캤나. 주둥이 주잡아 째뿔라."
"그럼 꿔준 돈 못받을거면 빈 건물이라도 빨리 세주이소. 월세 안들어온지 벌써 1년이 넘지 않았소? 세놓을 곳 못찾겠으면 내가 알아보겠슴메. 카페 몇 곳에 글 올리고 프렌차이즈 몇 곳에 연락해보면 견적이라도 나오지 않겠는교?"
"금마 주둥이 참 부지렁카네. 내 재산은 내가 알아서 한다카이 왜 자꾸 기웃거리노? 니마 검은 속을 내 모를 줄 아나? 애비 옆에 붙어있다 날름 먹으러 그러는 거 아닌교? 그 때문에 내 은퇴도 못하게 계속 일시키고 재계약하라고 졸라 제끼고 행정사 자격증 받으라 캐샀고 영어공부하라고 들이미는거 아녀?"
"바로 보셨습니다. 그게 내 혼자 잘 살려고 그러는게 아니라 이 집안을 위해서에요. 이왕 고생하며 사신거 이번 생은 거하게 일하다 가는 것도 좋지 않겠슴메."
"호로 자식이로고. 보따리 싸서 언능 나가뿐나."

이 과정이 매일 새벽 5시마다 반복된다. 나는 아버지가 뿌린 돈을 어서 거두고 부지런히 쭉 일하시길 바라고 아버지는 늘 그만 쉬고싶다를 연거푸 얘기하시는 이 대화의 향연. 못거둔 빚은 더 일해야하는 명분이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아버지는 나와의 대화속에서 서서히 인정하고 마는거다. 그렇게 일하고 그렇게 벌고 그렇게 갚고 그렇게 되찾는 삶을.
여기까지 생각한다면 우습게 보이겠지만 좀더 생각하면 아버지 뿐 아니라 내 삶도, 우리네 삶도 다 그런 것 같다. 대학 학자금을 빚내고, 집을 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낮고....전부 빚으로 빚어내는 삶이다. 아버지는 그런 삶을 나보다 일찍 경험하셨고 힘든 대가를 치르면서 하나하나의 단계를 모두 겪어내셨다. 빚이 생기면 갚고 빚이 생기면 갚는 그런 삶. 다음 단계로 나아갈수록 자연스레 생기는 그 빚의 터울을 조금이나마 낮춰보고자 투자라는 길을 찾아보셨던 아버지였고 그 결과는 아쉽게도 꽝이었던 것일 뿐인데. 개미로 사는 삶을 거부하려는 아버지의 주체적인 결정이 또 하나의 덜미가 되어 아버지를 옥죄는 것을 보며 안타까운 맘이 생긴다. 그렇게 오늘도 아버지와 같이 가는 출근길에 이러쿵 저러쿵 얘기를 하면서도 결국 마지막 인삿말은 속에 없는 빈말을 내뱉고 만다.

"아버지, 같이 힘냅시다. 인생 아직 한 바퀴 더 남았습니다."

IMG3-5-2-14.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성인소설 발송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