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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nie Volter Mar 04. 2017

입양미수사건

내 인생은 커다란 위기가 두 번 있었는데 두 번 다 20대 초반에 있었다. 한 번은 스무 살 때, 나머지 한 번은 스물 한살 때였는데 모두 어머니에 의해 촉발된 사건이었다.

우리집은 아들만 둘인 집안으로 아버지 포함 3부자가 흔히 말하는 상남자들이다. 무뚝뚝하고 배려심이 부족하고 자기만 아는...수컷 중에 수컷인 남자들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부잣집 귀한 막내딸로 자라온 어머니는 아버지 뒷바라지하랴, 아들 둘 키우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마침 내 대학 입학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갑자기 그동안 평생 얘기하지 않으셨던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꺼내기 시작하셨다.

"내 입양하고 싶다. 4살 가스나 한번 키우고 싶은데 우에 생각하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내 나이가 스물이 된 이 마당에 어찌 나보다 스무살 가까이 아래인 남의 핏줄을 본단 말인가. 또 훗날 있을지 모를 재산분쟁이나 가족간의 불화를 생각해서 거부의사를 즉각 표명했다. 헌데 문제는 그 후에 있었다.

마땅히 내 편이 되어줄거라 생각했던 아버지와 형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아무 말을 하기는 커녕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나한테 속에 없는 말을 던지는 것이 아닌가.

"아 새끼가 참 이기적이네. 니는 좋은 부모 만나서 편하게 컸는데 어찌 다른 불쌍한 아는 위할 줄 모르나? 그래, 살면 잠잘 때 곤히 잘 줄 아나?"
"내 말이 그말이라요. 좋은 대학 가봐야 뭐하노. 먼저 인간부터 되어야지. 임마 새끼는 어려서부터 지밖에 모르는 놈이었으라. 그라니 엄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싫다는 말부터 카재샀지. 그리 싫으면 이제 니 나이 꽉 찼으니 니가 나가라."

난 아버지와 형을 잘 안다. 두 부자는 남의 집안 핏줄, 그것도 여자가 들어오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내가 중학교 시절 때, 어머니가 부업으로 베이비시터할 때 남의 집 자식을 쳐다보는 아버지와 형의 싸늘한 시선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나를 디스하는 것은 어머니의 눈 밖에 나는 것을 피하면서 나를 악역으로 이용해 어머니의 입양시도를 분쇄하기 위함일 것이리라.

내가 반박하려고 말을 꺼내려는데 어머니가 말을 가로챘다.

"내가 가족 싫어하는 일이면 왜 하겠노? 안 하지. 헌데 애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반대부터 해잤샀는 니보니 곱게 물러가진 못하겠다. 내 니 키우느라 힘들었던 거 알재?"

어머니가 차갑게 얘기한다. 아버지와 형은 침묵한다. 나는 대답한다.

"네. 압니더."
"그래, 내 니 땜에 허리굽고 먹고 싶은 거 못먹고 지낸거 알재?"

어머니가 차갑게 얘기한다. 아버지와 형은 침묵한다. 나는 대답한다.

"네. 압니더."
"그래, 그럼 쉰이 넘은 애미가 앞으로 청소나 빨래 쭉 하는게 맞나 틀리나? 또, 니 학비 전부는 못 벌어도 니가 어느 정도는 채워야하는게 맞재? 아나, 모르나?"

어머니가 차갑게 얘기한다. 아버지와 형은 침묵한다. 나는 대답한다.

"압니더."
"그래, 알면 됐다. 내 니땜에 입양 포기한다. 엄마 외롭지 않게 니가 앞으로 잘 하그라. 알았재?"

어머니가 차갑게 얘기한다. 아버지와 형은 침묵한다. 나는 대답한다.
"알겠습니더. 엄마."

어머니는 차갑게 일어난다. 아버지와 형은 진작에 일어난다. 나만 남았다.

***

그로부터 지금까지 집의 청소와 빨래는 내가 하고 있다. 가끔 일이 힘들 때는 빨래는 너는 것만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내 몫이다. 사회인이 되며 내 발언권이 세져서 청소는 내 나이 서른살 때부터 아버지도 분담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최종 책임자는 나다.

그 날의 일이 있고난 후에 내 몸에 새긴 교훈은 의견이 있어도 함부로 먼저 꺼내지 말자는 것이다. 얌체같아 보였지만 아버지와 형은 상대가 누구인지, 말할 타이밍이 언제인지, 그리고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먼저 덥썩 미끼를 물 내가 있다는 것을 사전지식 없이도 파악하였다. 그 당시 내겐 없고 그 둘에게 있었던 그것. 바로 눈치라는 것. 그래, 나는 눈치를 내 나이 스무살 때 제대로 배웠다.

P.S : 입양미수사건이 터지고 반년 후, 나는 1학년 1학기만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형이 복학하니 학비를 이중으로 부담할 수 있는 집안을 배려해서였다. 근데 내가 군에 입대하여 훈련소 4주를 마치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큰 위기가 있었으니...
"아따, 클났다. 엄마가 니 군대 갔다고 니 없는 사이에 애 입양하려 한다. 니가 좀 말리라."
그렇게 말리고 싶으면 본인들이 말리면 될 것을. 왜 또 나를 이용하는 것인가. 또 내가 자리를 비웠다고 그 틈을 노리는 어머니는 또 무슨 심보인가.
소대장에게 울며불며 부탁하여 그 때 보낸 전화와 편지 한통. 그 덕에 두 번째 입양시도도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입대 기간 모았던 월급의 자진납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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