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nnie Volter Mar 06. 2017

예지몽 소동

정신을 차려보니 여자친구 집앞이다. 그렇다. 나는 오늘 여자친구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오기로 했다. 초인종을 누르니 여자친구가 반갑게 나를 맞고 뒤에 초로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계셨다. 분명히 여자친구의 부모님이리라. 

어머님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아버님은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시면 의심가득한 눈빛을 보내셨다. 어디로 안내할지 궁금했는데 아무 것도 없는 거실 마루바닥으로 나를 안내하는 아버님. 나는 까닭없는 불안함을 느꼈다. 

방석은 두개만 있었다. 당연히 나를 위한 자리는 아니리라. 부모님 두 분은 방석위에 앉으셨고 자연스레 나는 부모님을 마주보며 꿇어앉는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아버님은 나를 향해 말하셨다. 

"그래, 어디서 뭐하는 누군교?" 
"네. 저는 xx회사에서 팀장으로 일하는 yy입니다." 
"뭔교? 그게 회사 이름이가? 처음 듣는데..." 
"네. 작은 회사라서 잘 모르실 거에요. 저희 회사에서는..." 
"됐다, 마. 설명해줘도 낸 그런거 모른다. 그건 됐고..." 

"아부지 뭐하시노?" 
내 직장이 별로니 아버지 직업을 궁금해하시는건가. 영화 친구에나 나오는 대사를 막상 내 귀로 듣고나니 기분이 묘하게 않좋았다. 내가 답변을 주저하자 아버님은 한번 더 말하셨다. 
"말해라. 아부지 뭐하시노?" 

나는 뜸을 들이다 말했다. 
"은퇴하고 집에서 쉬십니더."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버님의 눈은 수직으로 치켜올라갔다. 이윽고 나직이 한 마디를 내뱉으셨다. 
"파혼이다. 이 자슥아." 

이게 무슨 일인가. 난 그저 맘편히 여자친구 부모님께 인사하러 왔을 뿐인데 어찌 이런 봉변을. 가만, 아버님의 얼굴이 어디선가 본듯한데. 어디선가. 골똘히 생각하다 갑자기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 

"이제 일어났나? 문디 자슥아. 오늘은 회사 안나가나?" 
정신이 들고보니 내 방 침대였다. 아버지가 방문 너머에서 내 속 긁는 소리로 잠을 깨우셨다. 그래, 악몽이구나. 생각해보니 대뜸 없는 여자친구가 생기고 과정없이 여자친구 부모님 집에 들어간다는게 말이 안되지. 여자친구 아버님 얼굴을 어디서 많이 봤나 했더니 배우 김광규였다. 그래, 내가 꿈임을 아니까 퍽하고 잠에서 깨어났구나. 근데 왜 갑자기 이런 꿈을 꾼걸까. 

"대답 안하나? 일어났으면 마늘까라. 이게 다 니 속에 들어가는건데 잠 자고 처먹기만 할끼가?" 
아버지가 계속 거친 말을 쏟아내셨다. 나는 대충 옷을 입고 아버지 맞은 편에 앉아 마늘을 까다 퍼뜩 생각이 들어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내 오늘 꿈 꿨는데 파혼당하는 꿈 꿨다. 그집 아버지가 나보고 뭐라하며 파혼했는지 아나?" 
"문디 같은게 꿈에서도 집안 욕보이네. 그래, 뭐라카며 쫓가내던데?" 
"아버지 뭐하냐고 묻길래 집에서 쉰다 했더니 파혼된기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이게 바로 예지몽 아닌교? 아버지 내 결혼할 때까지 일해라. 안그러면 자식 인생 망친데이." 
그렇다. 이 꿈은 내가 아버지에게 수시로 잔소리하는 재계약 독촉에 대한 예지몽인 것이다. 아버지가 계속 일하길 원하는 나, 아직 솔로이지만 솔로 탈출을 원하는 내 욕구가 합쳐져서 꿈의 형태로 찾아온 것이리라. 아버지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얘기하셨다. 
"문디 자식이 아침부터 무슨 헛소리고. 니 결혼 못하는 건 니가 못나 그런거지 왜 그게 내 탓이가. 내 도와줄 생각 없으니 걍 혼자 살라. 마늘 남은거 니가 까라." 
그렇게 나의 꿈은 예지몽이 아닌 개꿈으로 판정되었고 그날 아침 나는 마늘을 까며 하루를 보냈다. 꿈의 대가는 가혹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입양미수사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