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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nie Volter Mar 09. 2017

누가 우리집 강아지를 잠재웠나

어렸을 적에 형과 나의 삶은 어머니에 의해 좌우되었다.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어머니는 나름의 교육철학을 가지고 나와 형을 키웠는데 그것은 재능발굴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능이 있는지 찾는 시도는 해보아야 한다, 이것이 어머니의 지론이었고 그것을 위해 어린 시절 형과 나는 어머니가 보내는 학원, 체육관에 얌전히 다녀야했다. 

형과 내가 공통으로 배운 코스는 거의 없었는데 유일하게 하나 겹친 것이 바로 바이올린이었다. 바이올린은 왼손과 오른손의 동작이 각각 다르면서 동시에 해야하기에 두뇌발전에 좋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는 나와 형을 집에서 가까운 바이올린 학원에 보내었다.

한창 혈기 왕성하고 유치한 어린 시절이라 그런지, 아니면 형에게 지기 싫어하는 것이 동생의 본능이라 그런지 당시 나는 형한테 지는 것을 끔찍히 싫어했다. 공부, 운동, 키 모두 지는걸 싫어했는데 이 심보는 같이 배우게 된 바이올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형이랑 나는 동시에 바이올린 레슨을 받게 되어 진도도 똑같으니 서로 누가 더 나은지 비교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자세를 잡을 줄 알고 활질을 어느 정도 하게 된 후 이제 사람이 들을만한 수준의 노래를 킬 수 있게 되자 나는 대뜸 선생님에게 나와 형 중 누가 실력이 더 나은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심성이 착하신건지 아님 우리 실력은 누가 더 낫다 못하다 따질 가치가 없어서인지 선생님은 아무 대답도 안하셨고 그럴수록 나는 애가 타 어떻게든 형과 승부를 내보고 싶어 참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일찍 돌아온 나는 형이 내가 사놓고 아껴둔 고래밥을 먹은 것을 보고 말싸움을 하게 되었다.
"왜 내 고래밥을 먹었나?"
"먹기 좋게 내 눈앞에 '나 잡아줍소'하고 있길래 먹었다."
"그게 할 말이고? 내보다 바이올린도 못 키는 주제에..."
"누가 그러노? 내가 니보다 훨 낫지..."
마침 집에는 부모님 두 분 모두 안계셔서 싸움은 그칠 줄 몰랐다. 둘이서 옥신각신 다투다 나는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라 형에게 얘기했다.
"그럼 우리 바이올린으로 내기하자. 내가 이기면 고래밥 10개 사주고 형이 이기면 오늘일 엄마한테 안이르마."
"뭐, 좋다. 내가 이길거니. 근데 바이올린으로 어떻게 승부하려고? 같은 곡을 누가 더 틀리는지로 승부할거가?"
"아니, 내한테 좋은 생각이 있다."
나의 아이디어는 이랬다. 그 당시 우리집은 퍼그를 키우고 있었는데(이름은 깐돌이다) 퍼그를 무릎위에 올려두고 바이올린을 켜서 잠재우는 쪽이 이기는 걸로 승부를 하자고 했다. 형은 내 의견을 듣더니 '미친 놈'이라 욕했지만 결국 하기로 했다. 누가 덜 틀리는지로 내기하는 것은 서로 틀리지 않았다 잡아뗄 우려도 있고 뭣보다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첫 타자는 나였다. 나는 개집에 누워있던 깐돌이를 데려와 무릎에 앉혔다. 그리고 당시 가장 자신있게 킬 줄 알았던 '사냥꾼의 합창'이라는 노래를 켰다. 그 노래는 사냥꾼이 짐승을 사냥하는 내용을 표현한 것으로 꽝, 꽝 소리를 크게 활질로 표현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틀리지 않는데 집중했던 나는 애누리 없이 힘껏 활을 그었다.
"꽝"
"깽"
"꽝"
"깽"
내가 활을 그을때마다 안그래도 영 못마땅한듯 무릎위에 앉아있던 깐돌이는 '깽'소리를 지으며 무릎위를 벗어나려고 끙끙거렸다. 그렇게 한 곡이 끝나도록 나는 깐돌이를 잠재우지 못했고 일단 나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미련한 놈일세. 개한테 짐승사냥하는 노래를 키면 퍽이나 잘 자겠다. 내가 킬테니 잘 들어봐라. 깜빡하다 니가 먼저 졸지 말고."

형이 킨 곡은 브람스의 자장가였다. 너무나 흔해빠진 멜로디이고 활 한번을 킬 때도 길게 켜야하는데 그만큼 실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듣는 이로 하여금 잠은 커녕 불안만 주는 곡이었다. 실력이 그닥 별로였던 형은 깐돌이를 무릎에 올린 채로 자장가를 키다가 몇번이나 활질을 삐끗하였고 그렇게 우리 둘다 깐돌이를 잠재우는데 실패하였다.

첫 번째 대결이 실패로 끝나자 각자 다른 노래를 갖고 깐돌이를 무릎위에 올려 재울 때까지 바이올린을 하던 중 어머니가 오셨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어머니는 자식들이 시키지 않아도 바이올린을 연습한다고 생각하고 감동하여 좀처럼 하지 않는 칭찬을 형과 나에게 연거푸 하였다. (그리고 덤으로 고래밥을 포함한 과자 한보따리를 사주셨다.)

예상치 못한 칭찬 세례에 나와 형은 기분이 좋았고 그렇게 그 날의 승부는 끝났지만 그것은 사실 또 하나의 시작이었다. 승부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한 가지 목표가 생겼으니 그것은 바로 깐돌이 재우기였다. 그날 이후로 형과 나는 각자 집에 오자마자 깐돌이를 잡아다 무릎에 올려놓고 바이올린 연습을 계속 하였다. 이 시도는 깐돌이가 우리집을 떠날 때까지 계속 되었는데 우리는 한번도 깐돌이를 재우지 못하였다. 아니, 딱 한번. 내가 깐돌이를 재운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무릎위에 깐돌이를 올려놓고 바이올린 연습하다 엄마가 불러서 잠깐 자리를 비우고 돌아왔더니 깐돌이가 개집으로 돌아가 잠을 잘 때였다. 그 때 깐돌이는 내 노래를 듣고 졸려서 잔걸까. 아니면 자꾸 피곤하게 하는 나에게서 벗어나 행복해서 잔걸까. 언젠가 깐돌이를 본다면 꼭 묻고 싶다. 너 그때 왜 잔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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