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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nie Volter Mar 12. 2017

공포의 체육시간

에게 있어 중학교 2학년은 빛과 그림자 같은 시기이다. 사회물이 들지 않은 아직 선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학교라는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해준 어둠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 시작은 중간고사 이후 첫 체육시간 때였다. 체육 실기 과제가 핸드스프링이라는 (내 기준에는)고난이도 기술이었다. 그 동안 살면서 내가 해왔던 운동은 기껏해야 뜀틀, 줄넘기, 달리기 등 단순히 손발을 반복적으로 흔들거나 뛰기만 하면 되는 것들이었는데 최초로 '기술'이라 불릴 수 있는 운동을 접하게 된 것이다.

먼저 체육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성큼성큼 속도를 올리며 뛰어가더니 갑자기 머리를 아래로 숙이고 오른손을 매트 위에 올리며 전신을 물구나무 서듯 거꾸로 세워올렸다.그리고 바로 다리부터 바닥에 떨어지면서 똑바로 일어나 보였다.

"오오!"
선생님의 멋진 착지와 함께 반 아이들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남자 아이들은 키득거리면서 웃었고 여자 애들은 어떻게 할까 걱정되는 듯 수근거렸다. 선생님은 남자는 핸드스프링, 여자는 앞구르기로 실기 평가를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때부터 나의 시련은 시작되었다. 나는 운동에 있어서는 완전 잼병이다. 특히 뇌가 흔들리거나 거꾸로 뒤집히는, 즉 평형감각에 과부하가 되는 운동은 나에게 있어서는 재앙에 가깝다. 비록 지구는 둥글고 태양 주위를 돈다고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머리는 절대 움직여서는 안되는 확고부동 고정된 중심이어야 했다. 그런데 그 머리를 뒤집는 것은 물론, 그것도 한손으로 몸을 버틴 상태에서 무사 착지를 해야 한다니. 이게 무슨 가당키나 한 소리란 말인가.

그래도 한 편으로 마음이 놓이는 것은 나에게 있어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내 또래 아이들도 저런 고난이도의 운동을 익히는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테니까. 나 또한 매트 위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계속 익히다보면 남사스럽지 않은 수준까지는 체득할 수 있겠지. 이미 점수는 포기했고(체육에서 망한다 하더라도 나머지 과목에서 메꾸면 그만이다) 남들 앞에서 놀림거리만 되지 않는 수준만 되어도 만족이니 말이다.

선생의 시범이 끝나고 우리들 각자는 매트를 네 개씩 놔두고 연습을 시작했다. 매트의 개수는 네 개밖에 안되지만 우리들의 수는 40명이나 되어서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자연스럽게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놀랄 일은 그 때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다.

"오, 쉽네."
"뭐야, 해보니 어렵지 않은데."
분명히 녀석들에게도 처음 해보는 핸드스프링일텐데 믿기지 않게, 너무나도 쉽게 해내고 있었다. 마치 아주 자연스러운 동작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넘어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탄을 넘어 두려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공포감가 두려움에 떨며 계속 보고 있는 동안 내 앞에 줄서 있던 남자애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자기 차례가 올 때마다 무난하게 핸드스프링을 해내며 맞은 편 자리로 가서 앉아있었다.

두려움을 못이기고 양호실을 갈까, 줄에서 빠져서 반대편 쪽으로 도망갈까 고민하는 사이에 어느덧 내 차례가 왔다. 시끄럽고 자기 얘기들만 하던 아이들이 왠지 나를 주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몸이 얼어붙은 듯 말을 듣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발 두발 성큼성큼 앞을 향해 걸었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것을 머릿속에 되새기며 오른 손부터 매트 아래 내려놓고 다리를 힘껏 위로 올려 발부터 착지하는 것을 계속 그리며 몸을 움직였다. 허나...

"우하하하!"
"저거 뭐야?!"
"코미디 하냐?"

매트에 누워 앞을 보니 나를 보며 자지러지게 웃는 악마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 앞에 의자에 앉아 있는 체육 선생님도 나를 보고 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추측컨데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상황이 남들이 보기에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연출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래도 기억을 되짚어보자면, 분명 신체의 중심을 지탱해주어줘야 했을 오른손과 오른팔이 뒤집힌 몸의 체중이한꺼번에 쏠리는 것을 무서워하여 움츠렸을 터이고, 그 때문에 탄력과 리듬을 살리는 역할을 하지 못하여 무너졌을 것이다. 오른손, 오른팔의 무너진 균형 때문에 물구나무서기 역시 부실하게 진행되었을것이고 똑바로 서기 전에 우측으로 틀어지며 넘어진 것이다. 이 동작이 연속적으로 재생되면서 (덤으로 전력을 다하는 얼굴 표정이 더해져서) 다시 볼 수 없는 좋은 구경거리가 된 것이다.

나를 보며 깔깔깔 웃는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잔뜩 기가 죽은 채로 자리에 앉았다. 내 차례가 거의 끝이었기 때문인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벌써 한 차례 연습이 끝났다. 시간이 아직 남았기 때문인지 선생님은 한번 더 연습을 하고 들어간다고 외쳤다. 아직 상처가 아프게 남아있는데 다시 한번 전장으로 투입되어야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그렇게 치떨리는 또 한번의 굴욕의 시간이 찾아왔고 역시나 나는 또 원하지 않는 개그씬을 연출하고 말았다. 그렇게 체육시간은 끝이 났다. 나는 재능없음을 넘어 마이너스 재능이라는 개념을 그때 알게 되었다.

P.S :

결국 나는 핸드스프링 시험을 망쳤다. 부족한 운동 신경의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는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아이들의 비웃음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후 나는 체조 운동에 있어서는 덮어놓고 피하게 되는 버릇이 생겼고 이는 군대 생활 때까지 나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는 악몽으로 남게 되었다.
단순히 운동을 못하는 아이로 끝난 것이 아니라 몸으로 개그하는 놈이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 더 큰 상처였고, 그로 인해 타인 앞에서는 절대 약점을(특히 웃음거리가 될만한) 드러내선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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